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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11. 2024

누구의 불안인가

  중학교 2학년 기말시험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시험공부를 적극적으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아이들은 시험 스트레스가 있다.  


  어차피 시험 기간은 힘들잖아. 공부 안 하고 있어도 불안하다면 공부하면서 힘든 게 낫지 않아?


  시험 기간이 되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하는 말이다. 양아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는 아니다. 다만 자발적이고 적극적이지는 않다. 시키면 그냥 하는 정도다. 그런데 암기 과목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냥 하던 공부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사회, 과학, 역사는 그냥 할 줄 알았는데 교과목으로 만나는 교과서는 다른 모양이다. 아무 생각 없이 연습장에 끄적이면 외워지는 암기 과목을 싫어하는 걸 보면 너를 닮지 않은 게 분명하다. 너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해하지 못한 내용도 암기해서 시험을 치르곤 했다. 성적이 잘 나오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돌아서면 하얗게 잊어버리더라고 무조건 외웠다. 자꾸 외우다 보니 외우는 것 자체가 재미까지는 아니었지만 할 만했다. 수학 시험도 교과서를 외워서 쳤는데, 양아는 달랐다. 이해하지 못한 걸 외우지 못했다. 외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넌 필기도 안 하니, 여학생 교과서가 이렇게 깨끗할 수 있니?


  선생님이 프린트 주신단 말이야. 책에 필기할 게 뭐가 있어.


  그럼 프린트에 정리는 다 되어 있어?


  그렇지.    


  프린트 가져와 봐.


  학교 사물함에 있어.


  시험이 코 앞인데, 프린트도 안 챙기고 뭐 했니. 학교 시험은 필기한 데서 다 나오는데, 아무런 정리도 안 돼 있으니 암기 과목 성적이 그 모양이지.


  아니야. 수업 시간에 배운 데서 안 나와. 시험 문제는 수업 시간에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문제가 나온단 말이야. 나도 수업 열심히 듣고 있어. 배운 내용을 내야 하는데, 선생님들이 가르치지 않은 내용을 낸단 말야.

 

  그러니까, 문제를 많이 풀어 봐야 하는 거잖아.


  수업 시간에 배우지도 않은 문제를 시험으로 내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문제집 풀어보면 교과서 내용만으로 풀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지문도 너무 어렵고.


  양아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시험은 적어도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을 내야 하는 게 맞다. 응용문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유사한 내용을 충분히 가르치고 익힐 기회를 준 다음에 시험에 내야 한다. 하지만 시험지를 보면 시험을 위한 시험처럼 낯선 문제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응용문제라는 범위 안에 집어넣으면 출제의 근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험을 치러야 할 학생의 입장에서 본다면 수업 시간에 가르친 내용을 벗어난 내용을 풀어내야 하는 부담감이 크다. 그러니 시험 범위는 결국 교과서를 벗어나 시중에 있는 모든 문제집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학원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들어온 양아에게 암기 과목 문제집을 내민다.

 

  일주일밖에 없으니까. 범위 정해서 한 번씩 풀어보고 시험 칠 수 있도록 해.


  양아가 풀어야 할 범위를 표시해 두고, 오늘 풀어야 할 분량은 별도로 접어 준다.


  여기까지, 오늘 풀어야 해. 좀 피곤해도 이것까지는 하고 자.


  알았어.


  양아가 힘없이 대답한다. 한 시간 뒤 양아가 공부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문을 열어 본다. 깜짝 놀란 양아가 후다닥 연습장을 숨긴다.


  너 뭘 숨기고 있니?


  아냐, 아무것도.


  너 설마 만화 그리고 있었던 거 아니지. 만약 그런 거면 앞으로 만화 못 그리게 할 거야. 시험 기간에는 공부에 전념해야지.


  알았어. 할 게. 하면 되잖아!


  짜증 섞인 말투다. 적반하장이다.


  요 녀석 봐라.


  양아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는다. 무방비 상태에서 머리를 가격 당한 양아가 너를 째려본다.


  아, 정말 왜 때려!


  너 엄마한테 말투가 그게 뭐야. 아까 풀라고 했던 문제는 다 풀었니?


  양아가 뭐라고 대꾸할 사이도 없이 문제집을 확인한다. 앞부분에 몇 문제만 답이 표시되어 있다.


  풀라는 문제는 다 풀지도 않고, 너 정말 이럴 거야. 평소에 암기 과목 공부하란 소리 안 하잖아. 그러면 적어도 시험 기간 일주일 전에는 집중해야 할 거 아니야.


  뒤에도 풀었어. 모르는 문제는 넘어갔단 말이야.


  뒷장을 넘겨 보니 듬성듬성 풀린 문제가 보인다. 하지만 오늘 풀어야 할 분량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딴짓 그만하고 세수하고 와서 마저 풀고 자. 나중에 다시 확인할 거니까.


  양아가 공부하는 동안 잠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다. 아이에게 잔뜩 으름장을 놓고, 잠이 들었다니! 눈을 뜨자마자 양아 방으로 들어가 본다. 문제를 풀다가 잠이 들었는지 책상 위에는 사회 문제집이 펼쳐져 있다. 문제집을 요리조리 넘겨 보니 몇 문제를 제외하고 문제가 풀려 있다. 너는 앉은자리에서 바로 채점을 해본다. 생각보다 많이 틀렸다. 네가 잠든 사이 아이가 밤잠을 설치며 풀어놓은 문제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일주일 안에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과학과 역사까지 시험이 바로 코앞까지 왔는데도 문제집을 풀려보면 틀리는 게 많다. 이런 상태로 시험을 봐봤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다. 틀린 문제와 유사한 문제들을 뽑아서 다시 풀려보고, 틀리면 다시 설명하기를 반복한다.


  이 정도면 엄마가 시험 처도 치겠다. 도대체 누구 시험인지 모르겠네!


  양아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너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다. 어떨 땐 남편에게 양아 공부를 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너와 남편은 불침번을 서는 것처럼 교대로 양아를 지킨다. 남편이 교대해 주는 동안 잠이 든 날은 죄책감이 밀려든다. 남편과 교대를 해도 잠이 드는데, 저 어린것이 버텨주는 게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양아는 어딘가로 기운이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유난히 기력이 없다. 생각해 보면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양아의 머리를 얼마나 쥐어박았는지 모른다.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사과한 적은 없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맘처럼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해야 한다. 양아가 공부 못 하는 학생이 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양아의 시험과 맞물려 너의 학교도 기말시험 준비가 한창이다. 학생들은 그간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다.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시험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출근하면 질문하기 위해 교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양아에게는 없는 적극성과 자발성을 뛴 아이들이다. 시험 기간 동안은 교무실 출입이 제한되어서 복도에 서서 질문에 답을 해준다. 학생들이 문제집을 들고 오면 긴장하는 선생도 있다. 하지만 너는 오히려 질문하는 학생이 많을수록 보람을 느낀다. 학생들이 그만큼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면 성적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을 때 공부할 마음도 생기는 것이다. 양아는 성적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없어서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학생들을 대하다 보면 자꾸만 양아 생각이 난다. 수업은 수준을 높이고 시험은 쉽게 내게 된 계기도 양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시험의 내용이 수업 내용을 넘어서면 동기를 잃어버린 다는 걸 양아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업과 시험의 수준을 맞추면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 저 영어 수학은 포기하고 독서만 공부하고 있어요. 보세요. 수업 시간에 필기 열나게 했어요. 프린트도 다 정리해서 보고, 문제집도 풀고…….


  중하위권의 아이들도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교과서와 수업 시간에 받은 프린트만 공부해도 80점을 보장할 수 있도록 문제를 만드는 걸 지키려고 노력한다. 기본적인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게 한 뒤에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내용을 넣기도 한다. 가령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의 구조를 요즘 뜨고 있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에 적용시켜 보는 수행을 평가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런 창의 수업은 처음엔 반발이 많았다.


  , 이런 거 분석해 오라고 하니까, 스트레스받아요. 이런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단 말이에요. 있는 내용 머리에 넣기도 바쁜데, 없는 거 만들어 오라고 하시니까…….


  전교 1등인 미래가 말했다. 수업 내용에서 80퍼센트 이상의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수업에 열중하는 학생이다. 전교 1등도 막막한 수행 과제였지만 수행 과제가 끝나고 발표 시간을 가졌을 때 90퍼센트 이상의 학생들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능력이 발현된 것처럼 뿌듯해했다.


  처음엔 정말 막막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분석이 되는 게 신기했어요. 선생님 말처럼 정말 수업 시간에 배운 이야기 구조들이 요즘 이야기에 들어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평소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들도 성공적으로 수행을 완성했다.


  그래, 그것 봐. 내가 뭐랬니!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너희들이 한 작업들이 비평가들이 하는 일들이야. 너희들도 비평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거야. 이런 수업을 통해 자신의 재능과 흥미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는 거지.


  아이들은 팀별로 작업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모두 환하게 웃었다. 수행 평가는 절대 평가여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몇 번 성공 경험을 한 학생들은 점차적으로 복잡해지는 수행 과제에 대한 거부 반응이 사라졌다.  


  오늘은 양아의 기말 시험이 끝나는 날이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운동장을 돌고 있을 때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양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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