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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인 것들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는 죽음
초보 수행자의 작은 깨달음
by
시원
Dec 16. 2022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아버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어머니와 형누나들을 따라서 울었다.
이때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는 홀로 육 남매를 키워야 한다는 절망감이 더 컸을 것이다.
그만큼 남은 가족들의 삶은 절박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0년을 더 사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육 남매는 장례를 치르는 내내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평생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난한 고생과 2년간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겪은 어머니의 고통과
외로움을 알기 때문이었다.
육 남매씩이나
되면서 홀어머니 한 분께 효도를 다하지 못한 회한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흘리신 눈물 속에 담겨 있었던 절망의 크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죽음에 대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다. 상을 당한 사람들이 겪을 슬픔의 깊이와 강도를 감히 짐작할 수는 없지만, 나의 기준으로는 어머니보다 더한 슬픔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고장을 받으면 먼저 고인의 나이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돌아가신 어머니(74세에 작고) 보다 많으면 어머니 생각이 나 마음이 아팠다. 저 연세까지만이라도 사셨더라면..
고인의 연세가 90세 이상이면
유가족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슬퍼하는 유가족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속으로 눈물을 흘리다가 아무 말없이 장례식장을 나왔다.
만약, 어머니가 소위 호상이라고 불릴 정도의 연세에 돌아가셨더라도 나는 그렇게 슬퍼했을까? 어쩌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평균 수명보다 열 살 정도 더 산 삶과 평균 수명보다 일찍 사망한 삶, 그 차이는 나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고인이 살아온 삶의 여정은 외면한 채 단지 나이의 크기 만으로 슬픔의 수위를 조절할 만큼의 차이일까..
화장을 원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바람대로 공원묘지에 매장하여 모셨다. 얼마 전에 어머니 산소에 성묘를 다녀왔다. 절을 하면서 문득 전에 없던 감정이 가슴속에 솟구쳤다.
그동안 어머니를 위해 흘린 눈물과 어머니를 향한 슬픔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효도를 다하지 못한 나를 용서해 달라는 속죄와 반성의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눈물과 슬픔은 어머님의 삶을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세상의 모진 풍파 속에서, 죽음보다 더한 극한의 역경을 견뎌내며 막내아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당하게 살아남으셨다.
어머니의
훌륭한 인생을 내가 어떻게
함부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어머니의 숭고하고 위대한 삶을 비극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또 한 번 불효를 저지르는 일이다.
눈물과 슬픔이 아니라 무한한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쳐 보내드렸어야 했다.
아니
살아생전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세상 그 누가 보다 영광스러운 삶을 사신
위인의 무덤 앞에서 눈물 대신에 박수와 존경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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