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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Jan 27. 2023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다면 팀 회식을 맡아라


조직의 리더가 당신에게 회식 준비를 맡긴다면 당신을 어느 정도 신뢰한다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당신의 역량을 한번 테스트해 보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당신이 조직의 리더라면 회식 장소와 메뉴에 대해 가급적 관여하지 말고 부하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맡겨 둬야 한다.  회식을 주관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팀원들의 성향과 역량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팀 회식이 비교적 잦은 편이었다. 하루를 멀다 하고 축하할 일이나 위로할 일끊이질 않고 발생했. 마땅한 이유가 없으면 '불금'을 위해서,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알코올을 보충하기 위해 퇴근 후 회사 근처 선술집으로 모였다.


회식은 팀 내 총무가 주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 팀원들 중에 나이나 직급이 중간급 정도 되는 직원이  총무 역할을 수행했다. 그 무렵 내가 새롭게 맡은 팀에는 성과가 좋은 에이스 직원이 몇 년째 총무를 맡고 있었다. 평소 회의와 출장, 보고서 작성 등으로 업무량이 과중한 가운데 총무 일까지 챙기느라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에이스 직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내가 마련한 대책은 직무 순환제였다. 전체 팀원들을 대상으로 매 분기 제비 뽑기로 순번을 정해 총무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물론, 원하지 않는 팀원의 이름은 추첨 상자 안에 넣지 않았다. 총무 순환제의 다른 목적은 팀원들을 빨리,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회식을 주관하는 일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직원들의 성격과 특징, 마인드와 역량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에이스 직원이 총무직을 사퇴하고 첫 번째로 뽑힌 신임 총무는 P대리었다(당시는 직급 체계가 통합되기 전이었다). 사교성이 좋고 술자리가 잦은 P대리는 회사 주변 일대의 맛집 정보를 하게 꽤 차고 있었다.


하지만, 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P대리는 경험 부족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나이가 어리고 팀 내 직급이 낮아 선배 직원들의 입김에 쉽게 휘둘렸다. 술 위주의 회식 문화를 반대하는 일부 여직원들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질질 끌려가던 회식 장소 문제는 전임 총무의 보이지 않는 개입으로 겨우 마무리되었다.


다음 총무는 팀원들 중 고참인 과묵한 성격의 H차장이었다.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평소 동료들과 소통이 별로 없는 편이어서 총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 의문이었다. 

회식을 일주일 정도 남겨 둔 시점에 H차장은 나를 찾아와 회식 방안을 보여 주었다. 파워포인트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정성 들여 만든 보고서 같았다. 나는 대충 훑어본 다음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고, 다음 날  단톡방에 회식 공지가 올라왔다. 전임 총무에 비해 조용하고 신속한 결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H차장은 내게 회식 방안을 보여준 직후 팀원들에게는 팀장이 결정한 으로 통보함으로써 잡음을 차단시켜 버렸. 회식 장소 또한 평소 직원들이 점심에 자주 애용하는 평범한 식당이었다. 


다음 총무는 K과장이 뽑혔다. 여자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과장으로 진급했고, 차분한 성격에 스마트한 직원이었다. 내가 왜 분기별로 총무를 바꾸는지 눈치를 챈 K과장은 전임 총무들의 선례를 의식한 듯 팀원들과 활발하게 상의를 하고 가끔 내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K과장은 회식 이틀 전 내게 찾아와 회식 장소와 메뉴를 알려주며 팀원들이 모두 동의했다는 과 워낙 유명한 맛집이라 원하는 날짜에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손님들로 가득 찬 식당 내부는 활기가 넘쳤고, 음식 맛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문제는 좌식 테이블인 데다가 삼삼오오 쪼개서 앉다 보니 옮겨 다니기가 불편하고 대화는 산만했다.

K과장기억에 남을만한 맛집에서 회식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지만, 나는 팀원들과의 소통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었다. 그저 맛있는 음식이 목적이라면 굳이 우르르 몰려갈 필요 없이 개인별로 회식비를 나눠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팀원들의 다양한 성향만큼이나 총무직을 수행하는 모습 또한 제각각이었다. 각자의 개성과 장점을 충분히 살렸만, 실수와 단점 또한 노출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 부족이었다. 이는 전체 팀원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오래된 문제점으로 팀의 화합뿐만 아니라 개인의 업무 역량 향상대인관계를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회식 장소 하나 정하는데 무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회식을 준비하려면 고려하고 점검해야 될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참석자 파악과 설득, 날짜 선정과 변경, 소통과 조율, 조사와 시식, 맛과 가성비, 서비스와 청결 상태, 인테리어, 동선 등등. 특히, 참석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소외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습관적으로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팀원에 대해서는 팀장한테 맡겨야 한다). 타인을 위한 봉사 활동에는 업무 이상으로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직장 회식이 크게 줄어든 것은 맞지만,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회식문화의 변화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라떼세대'들에게 익숙한 회식 분위기는 MZ세대들에게는 따분하고 소모적이다. 심지어 이직 사유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노알코올 회식이 늘어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회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팀원들에게는 미참석의 이유를 묻지 않고 별도로 식사 비용을 지원해 준다. 다만,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팀원에게는 어떤 종류의 회식이든 한번 주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권유한다.

대부분 팀원들은 회식을 주관한 후에 얻은 것이 더 많았다는 소감을 전해 주었다. 특히, 워크숍 같은 1박 2일 팀 행사를 맡아본 팀원은 자신감이 크게 높아져 이벤트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아직 단체 회식 문화가 남아있는 직장에 몸을 담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총무 역할을 수행해 볼 것을 권장하고 싶다. 낡은 회식 문화에 끌려 다니며 불평만 하기보다는 이왕이면 건전하고 유익한 문화를 선도하는 주역이 되어야 . 

조직의 리더와 동료들은 당신이 보여준 봉사정신리더십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직장 내에서 더 중요한 업무를 맡을 수 있는 기회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회식 자리가 괴로운 자리가 될지, 즐거운 자리가 될지, 아니면 기회의 자리가 될지는 오로지 당신의 판단과 노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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