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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Mar 01. 2023

동해안 국도에서 만나는 풍경들

솔밭 아지트


휴가철을 제외하면 경북 동해안 도로는 주말에도 비교적 한산하다. 지방에서 주중 독거인으로 지내던 시절, 나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휴가를 내고 이 한적한 해안 도로를 따라 정처 없이 차를 몰았다.


7번 국도로 알려진 이 코스는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내륙에서 출발한 산자락이 동쪽을 향해 내려오다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선심 쓰듯 자투리 땅 한 조각을 내어 주었고, 이 조각들을 붙이고 이어서 해안 도로가 만들어졌다. 아기자기한 해안선 굴곡과 완만한 경사 덕분에 장시간 운전에도 지겹지가 않다.


도로와 바다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바짝 붙어있다. 바다와 너무 가까운 곳에 이르면 도로는 파도소리에 깜짝 놀라 산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도로가 바다에서 너무 멀어질까 봐 걱정이 된 파도가 잽싸게 뒤로 물러나준다. 도로와 바다의 이러한 밀당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다.


바다의 풍경이 단조롭게 느껴질 때쯤이면 아무도 살지 않는 듯한 작은 마을이 이따금씩 나타나 준다. 담벼락 아래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는 자동차 소리가 귀찮다는 듯 눈을 잠깐 떴다가 이내 다시 감는다. 한적한 마을 도로변에는 노부부가 바다에서 갓 건져낸 미역을 평상 위에 느릿느릿 펼치고 있다. 마을에서 늙지 않는 것은 파도 소리뿐이다.


모퉁이를 돌자 이번에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서자 옅은 바다 내음을 살짝 머금은 커피 향이 그윽하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작은 어촌에 정착한 젊은 부부의 감성이 느껴지는 세련된 공간이다. 창가에는 바다와 육지의 오래된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는 등불이 무심하게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완만하게 물결치는 해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예쁜 마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림엽서 같은 풍광을 휴대폰에 담는 사람들이 보인다.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 보기 드물게 오렌지색으로 단장한 지붕들이 같은 색깔의 등대를 마을 풍경 안으로 끌어들인다. 안으로 꺾어 들어간 작은 만(灣) 덕분에 마을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고래불 해수욕장 못 미쳐 영리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근처 유명 해수욕장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깨끗백사장과 울창한 솔밭이 일품이다. 비수기에는 무료 캠핑이 가능해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나는 이 근사한 솔밭을 보자마자 아지트로 정했다. 내게 중요한 장소가 될 것이라는 감이 왔기 때문이었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머리를 비우면 이곳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다시 채웠다. 혼술과 밤바다는 내게 늘 힐링과 사색의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이제는 거리가 많이 멀어져 버렸지만, 조만간 술과 고기를 싸들고 7번 국도를 따라 영리 해수욕장 솔밭 아지트로 달려가야겠다. 어울리지 않는 글쓰기 연습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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