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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May 28. 2023

호의는 함부로 베푸는 게 아니다

지하철 자리 양보


코로나 방역 수칙이 완화되 퇴근 후 술자리부쩍 늘어났다. 다시 찾아온 자유를 누리려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돈, 시간, 체력.. 어느 하나 부담되지 않는 것이 없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할 얘기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2차 '맥주 한잔 더'가 사라지면서 지하철을 이용한 귀가가 가능해졌다.


한 번은 술이 조금 취한 상태에서 지하철을 탔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열차 안은 거의 만원이었. 손잡이 고리 하나에 겨우 의지한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열차의 움직임에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차라리 택시를 탈 걸.. 살짝 후회를 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빈자리가 하나 생겼다. 마침 열차가 한번 덜컹거리며 나를 밀어주자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냉큼 다.


앉자마자 눈이 감기고 몽롱한 상태로 빠져 들었다. 내릴 역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온몸에 퍼진 술기운에 졸음이 쏟아졌다.

머리방아를 찧으며 비몽사몽 간을 헤매고 있는데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부부로 보이는 30대 중반의 남녀 한 쌍이  앞에 서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여자는 연신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 역을 지나친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천장에 매달린 전광판 쪽으로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불록하게 튀어나온 여자의 배 부위가 내 눈앞에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아차 싶은 생각에 바닥을 내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짙은 분홍색의 표식이 너무나 선명했다.


나는 튕기듯이 일어나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이 좀 취해서.. " 머리를 숙여 정중하게 사과를 하면서도 시선은 나도 모르게 여자의 아랫배를 향하고 있었다. 펑퍼짐한 원피스로도 가려지지 않는 볼륨감이 제법 선명해 보였다. 


여자는 나의 갑작스러운 양보에 놀랐던지 자리에 앉으면서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젊은 부부의 눈에 내가 얼마나 매너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까!

얼굴이 화끈거려 황급하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뒤에서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내가 살 좀 빼라고 했지!" 


술이 덜 깨 약간 얼떨떨한 상태였지만, 등 뒤의 상황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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