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밤을 지켜주는
그 별은 아주 작았다. 가로등 하나와 그 불을 켜는 사람 하나만 있는 별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린 왕자가 인사를 했다.
"명령이라네. 불을 켜야 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일 틈도 없이 바쁘게 작은 가로등에 불을 밝혔다.
잠시 후 다시 그가 말했다.
"불을 꺼야 해. 이건 명령이야"
그는 불을 껐다.
불을 켜고 끄는 일, 반복적인 그 일에 남자는 온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 전부 인 듯, 그 외 것은 그에게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이젠 1분에 한 번씩 불을 켜고 꺼야 해."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별이 너무 빨리 돌아서 말이지. 낮도 밤도 너무 짧아."
남자의 그 말이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내 모습 속에 투영되었다.
나도 그랬다. 한때 '일'이라는 이름의 불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일어나자마자 출근 준비,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 전원 켜기, 회의, 보고, 결재, 눈 감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내 하루를 이끌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
누군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대답했다.
"해야 하니까. 내 일이니까."
내 대답이 가로등 켜는 사람의 말과 닮아 있었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반드시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멈추지 못해 되풀이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린 왕자는 그에게 물었다. 그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아저씨는 왜 이 일을 계속하세요?"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명령이니까. 난 명령을 따를 뿐이야."
그 말에는 짙은 무기력이 숨어 있었다. 그건 책임감으로 위장된 체념이었다. 의무에 짓눌려 스스로도 이유를 잊어버린 순종이었다.
그건 내 모습이기도 했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해야 할 일' 앞에 나를 지우며 하루하루를 소진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기계처럼 움직이고, 생각 없이 버티고, 그저 남은 불빛만 간신히 지키며 살던 때도 있었다.
가로등을 켜는 사람도 나도 게으르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성실했다. 하지만 그 성실함 때문에 때때로 무너지기도 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노력은 자신을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이유 없는 충실함인지도 모른다.
의미 없는 반복 앞에서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나는 성실하다'는 프레임에 갇힌 채. 그것은 사실은 '나는 멈출 용기가 없다'는 다른 이면이기도 했다.
어린 왕자는 그와 나를 바라보며 맗했다.
"이 일은 아름다워요."
아름답다니 "왜" 나는 물었다.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주잖아요."
그 말에 나는 순간 울컥했다. 내가 켠 불은 단지 업무의 불빛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불안을 덜어주고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했던 나날들이 분명히 있었다.
구직자들에게 건넨 한마디 "괜찮아요." 힘들어하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가만히 다독여 주던 시간들. 그 모든 게 내가 켰던 가로등이었다.
그 별은 작지만 그 일은 별의 크기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다. 그것은 누군가의 밤을 환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반복 했던 그와 나의 일은 누군가를 위한 작고 따듯한 빛이었다.
어린 왕자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 사람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존경스러워"
그가 본 것은 단순한 바쁨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성실함 뒤에 숨겨진, 조용한 책임감을 본 것이다. 진짜 위대한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불을 켜는 그 묵묵함이었다.
예순의 나는 나를 다시 바라본다. 지켜낸 하루, 묵묵히 감당한 일, 그곳에서 지켜낸 마음. 그것은 굳건한 심지였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밤을 밝혀주던 가로등 켜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