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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을 켜는 사람 2

멈추는 법을 배우는 시간

by 담서제미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말했다.

"나는 단 1초도 쉴 틈이 없어. 1분마다 한 번씩 불을 켰다 껐다 해야 하거든."


그것은 삶의 일정한 규칙이 아니라 삶의 비명처럼 들렸다. 결코 멈추지 못하는 삶. 어린 왕자는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하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의미를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단순히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를 보며 퇴직 직전의 나를 떠올렸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일은 끊임없이 어어졌고, 매번 시간을 쪼개서 살았다. 잠시라도 멈추면 불안했다. 내가 멈추는 순간, 세상에서 도태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통증이 이어졌다. 허리, 어깨, 목, 무릎, 발목, 마음에서 끊임없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나를 점검하 듯 혼잣말이 이어졌다.


가로등을 켜는 사람에게 어린 왕자는 제안했다.

"걸어 다니면서 해 지는 걸 보면 쉴 수 있지 않을까요?"


속도를 늦추는 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단지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예순의 나는 이제야 조금씩 멈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하루 종일 빈 공간에 홀로 있어 보기도 하고, 산속 의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그 시간들이 주는 평화를 느끼고 있다.


가장 놀라운 건, 비로소 주변의 고요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실 창 밖을 스치는 바람 소리, 커피물 내리는 물방울 소리, 꽃잎이 방긋 웃으며 내게 오는 발자국 소리, 내 숨소리.


그것은 그동안 내가 잊고 살았던 나의 리듬이었다.


가로등 켜는 사람은 말했다.

"이제는 신기한 게 하나도 없어."

어린 왕자는 그런 그를 위해 별이 떠오를 때마다 박수를 쳐주었다.


그는 처음으로 웃었다. 단조롭고 적막한 반복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그에게 어린 왕자가 쳐 준 박수 소리는 의미이자 응원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이따금 찾아오는 타인의 격려가 얼마나 커다란 온기였는지 떠올렸다.


"그만해도 돼요."

"충분해요."

"잘했어요."

"애쓰셨어요."


그 한마디가 삶의 리듬을 되찾게 한다는 걸 안다. 우리는 누군가의 '괜찮아'라는 말에 힘을 얻고 때로는 멈추는 법을 배운다.


가로등을 켜는 일이 끝난 뒤, 어린 왕자는 별을 떠났다. 그는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말을 적게 했지만, 가장 많은 걸 전해줬어."


그 말은 나에게도 새겨졌다.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많이 움직이며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진짜 중요한 건, 의미 있는 반복이며 멈춤 속에 깃든 숨이며 단순함 안에 피어나는 진실이다.


이제 나는 하루 중 아무런 목적 없이 걷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와 상관없이 내 마음만큼은 천천히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믿기 위해서다.


오늘도 가로등은 여전히 꺼졌다 켜지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일 분마다 손을 들고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작은 미소 하나, 박수 소리, 꽃 하나가 있다면 그의 하루는 단순한 의무를 넘어 존재의 증명이 되리라.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시 빛날 수 있는 준비와 도약을 위한 웅크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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