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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별

존재의 의미

by 담서제미

어린 왕자는 드디어 지구라는 별에 도착했다. 우리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은 황량한 사막이었다.

"여기가 지구야. 사람이 왜 하나도 없어?"

어린 왕자는 물었다.


지구에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무려 20억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서 둥지를 틀고 있었다. 단지 우리가 발을 디딘 곳이 하필이면 사람 하나 없는 사막이었을 뿐이었다.


지구는 그동안 우리가 가 본 어떤 별보다 넓고 복잡했다. 우뚝 솟은 건물은 하늘로 향해 거대한 나무처럼 자라 있었다. 거리마다 형형색색 반짝반짝 빛나는 전광판이 어지러웠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아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 말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렸다. 나 역시 수십 년간 사람들 틈에서 살았다. 매일 누군가와 마주쳤지만, 진심으로 마주 본 적은 얼마나 될까?


돌이켜보니 단지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았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사람을 더 고독하게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서 처음 느낀 건 드넓은 하늘도 넓디넓은 땅도 수많은 사람도 아닌 쓸쓸함이었다. 그는 그 도시에서 제일 높다는 빌딩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건물과 거리에서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괴했다. 마치 서로 떨어져 있는 작은 섬들 같았다. 모두 외따로 서 있는 섬. 그 장면이 군중 속 고독을 떠올리게 했다. 박수갈채 속에서도 한 발 물러서 있는.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한 마리 여우를 만나고 나서야 관계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다. 그러기 전까지는 그는 어딜 가든 철저히 혼자였다.


지구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살아도 진짜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그가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사막 한복판에 서 있는 존재일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결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려있다. 진짜 고독은 혼자 있어서가 아니라 함께 있는 듯하면서도 마음이 닿지 않는 것에 있었다.


어린 왕자는 말했다.

"사람이 많아도 그중에 내가 길들인 존재가 없으면 나는 그저 떠도는 별 하나일 뿐이에요."

그 말이 나에게 별처럼 꽂혔다.


내가 살아온 수많은 인연 중, 서로에게 길들인 혹은 길들여진 존재는 몇이나 될까? 그들은 내 별을 기억하고 있을까?


혼자 걷는 길 위에서 누군가의 마음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나를 본다.


내가 건넨 말 하나, 함께 나눈 시간 한 조각, 같이 웃는 순간순간. 그 조각들이 누군가의 삶 안에서 서로 빛나게 해 주기를.


지구는 넓고 사람은 많다. 그 많은 사람 중 단 한 사람 내 마음을 진짜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지구는 더 이상 사막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누군가에게 별 하나였고, 누군가도 나에게 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별이 반짝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구라는 별에 둥지를 틀고 있다면 사막에서도 꽃이 피어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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