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는 끝이자 시작
어린 왕자와 함께 떠난 여행이 어느덧 반년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지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빛도, 건물도, 사람도 없는 그저 황량한 모래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는 정말 조용하네"
그 말이 바람을 타고 사막 곳곳에 퍼졌다.
길도 사람의 흔적도 없는 그곳에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나와 어린 왕자만 서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와 다름없이 별은 반짝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더 쓸쓸해 보였다.
"안녕."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모래 속에서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긴 실루엣이 있었다. 그건 뱀이었다. 가늘고 긴 유연한 몸짓은 사막의 고요와 닮아 있었다.
"지구에는 사람이 없니?"
어린 왕자는 물었다.
"여긴 사막이야. 사막에는 아무도 없지"
“사막은 외롭구나”
“사람이 사는 곳도 역시 외로워”
그랬다. 외로움은 시공간을 초월했다. 사막이든, 사람이 많은 곳이든 상관없이 우리 곁에 맴돌고 있었다. 나 역시 그곳에서 문득문득 길을 잃었다. 수시로 내 마음을 부정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마음은 늘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상태로 계속 어디론가 가기만 했다. 몸은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마음은 수시로 멈춰 섰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눈빛 하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는 그 외로움은 진하고도 깊었다.
"너는 사막에서 무엇을 해"
그것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는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지"
"어디로"
"사람이 원래 왔던 곳, 머나먼 기억 저편의 세계로"
열한 살 때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순의 나는 그 말이 죽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나는 죽음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처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고요하고 평온하다. 죽음이라는 것은 생의 마무리가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잃어버린 의미로 돌아가는 문이다.
죽음보다 무서운 건 소리도 모양도 형체도 없는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아니라 자기 안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때다.
어린 왕자와 뱀이 나눈 대화를 들으며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작은 흔적이라고 남기려 애를 쓰는 건 무엇일까?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는 이 행위는 또 다른 형태의 외로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란 삶의 반대가 아니다. 살아있어도 관계가 끊어지면 죽음과 같다. 그것은 생명이 끝나야만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누군가와 내가 맞닿지 못할 때, 존재에 대한 상실감이 찾아온다. 반대로 누군가와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면 삶은 충만으로 가득찬다.
삶과 죽음은 매 순간 순환 고리처럼 이어진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끝없이 갈구한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소통되기를.
나는 사막의 끝에서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어린 왕자와 내가 돌아가야 할 별이다. 멀지만 가까운 곳. 나는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
“안녕, 잘 있었어, 오늘은 외롭지 않았어”
그 인사 안에는 생과 사의 순환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