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서로의 마음의 다리를 건너는 일
높은 산에 오르면 모든 걸 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지구별 전체와 사람도. 어린 왕자는 산을 오르면 누군가 반갑게 맞아줄 거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약간 들떠 있었다.
마침내 산 꼭대기에 오른 어린 왕자는 외쳤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누구니" "외로워"라고 아무리 외쳐도 재생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의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커다랗고 높은 산 정상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이건 대화가 아니야. 단지 내 말이 되돌아올 뿐이야."
어린 왕자 19장은 절절하면서도 외로웠다. 그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이 산속 같지 않을까?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SNS에 일상을 기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소리를 내지만 정작 돌아오는 건 자신이 낸 목소리 뿐인 세상.
우리는 끊임없이 "나 여기 있어" "누구 없어요?" 나를 알아봐 주고 내 말에 대답해 주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는 어디를 가든 핸드폰에 눈을 박고 있는 박제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하철에서도, 식당에서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은 핸드폰에 있었다. 그 침묵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메아리였다.
메아리는 언어를 닮았지만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마음을 건너는 다리가 무너져 버린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졌다. 그건 대화가 아니라 마음이 없는 말의 행진이었다. 대화는 듣기에서 시작되어 점차 꽃이 피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다림이 수반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말을 하고, 웃는 그 속에 진짜 대화는 얼마나 될까?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짜 내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던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피상적인 말들만 쏟아내곤 했다.
문득 마음이라는 것은 산처럼 높고 외로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 흔하게 하는 말들이 있다. "언제 밥 한번 먹자" "다음에 보자" 그 말은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마음이 산을 넘어가진 않았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대화였지만 상대는 응답만을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적도 있었다.
대화는 서로에 대한 마음의 다리를 건너는 일이었다. 그 마음의 다리가 이어지지 않으면 남은 것은 메아리일 뿐이었다.
내가 말한 것에 대답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상대의 침묵이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 소통의 부재는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마음의 부재라는 걸.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게 하는지, 어린 왕자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외쳐도 그 말만 되풀이하는 별을 보고 메마르고 날카롭고 각박한 별이라고 한 어린 왕자의 그 마음이 절절하게 내 마음에 닿았다.
예전에는 내 말을 경청해 주는 사람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 멈춘 후에도 함께 머물러주는 사람이 좋다. 대화는 반응 속에 숨 쉬고 있는 공감이기도 했다. 말을 주고받는 것은 기술의 영역일지 몰라도, 마음을 나누는 건 존재의 깊이에서 나온다.
우리 모두는 대화의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은 결코 직선이 아니다. 구불구불하거나 때로는 절벽 끝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까지 수천 번의 메아리를 지나갈지라도.
이제 나는 듣는 연습을 한다. 들리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이면을 듣는 연습을.
어쩌면 대화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그저 "안녕'이라는 말이 그날 하루를 견디게 해 줄 단 하나의 끈일 수도 있다. 나는 산 정상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이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그 따뜻한 침묵 속에는 진짜 대화가 살고 있다. 마음으로 이어지는 대화, 말은 메아리처럼 되돌아올 수 있지만 대화는 서로의 다리를 건넌다. 우리는 매일 이야기를 하지만 이해는 드물게만 한다. 어쩌면 소통은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말 한마디가 머물 수 있는 여백에서 피어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