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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를 모를 때 특별함은

피어난다.

by 담서제미

어린 왕자와 함께한 지 6개월이 넘었다. 열한 살에 만난 그가 예순이 넘어 나를 찾아온 이후, 매 순간을 같이 한다. 그는 나의 들숨과 날숨 속에 들어 있는 숨결이자 스승이다. 심장 속 피돌기처럼 순환을 할 때마다 세포 곳곳에 길을 내주고 있다.


어린 왕자 20장이 내 앞에 있다. 장맛비가 시작된 창 밖은 대낮인데도 온통 회색이다. 그 회색빛 사이로 오랜 시간 사막과 바위, 눈을 헤치고 어린 왕자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그는 장미정원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라고 여겼던 그의 장미와 똑 닮은 5천 송이나 되는 꽃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장미꽃. 그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존재가 수천 송이 중 한 송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마음은 사막보다 더 황량했다.


"내 꽃은 특별하지 않았어."

그 말에 묻어난 상실감은 어린 왕자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깊었다.


그는 자기 별에 있는 장미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 하나뿐인 꽃이라 믿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믿음을 무너지게 하고 있었다. 비교를 몰랐을 때, 그는 행복했다. 비교를 한 순간, 그의 마음은 지옥이 되어 버렸다.


그 마음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졌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비교에 시달렸다. 누군가는 더 똑똑했고, 누군가는 나보다 더 뭐든 지 잘했다. 비교 앞에 설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어린 왕자가 장미들 앞에서 작아진 것처럼.


"흔한 장미꽃 하나, 무릎 밖에 안 차는 화산 세 개, 그것도 하나는 영원히 꺼져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훌륭한 왕자가 되겠어" 라며 울고 있는 그는 지난 세월 속 어디쯤에 있었던 내 모습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비교가 시작된 순간 흔들린다. 나와 관계든 타인이든 사물이든 비교를 버릴 때 깊어진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때로는 깨지고 부서지면서, 나와 관계를 맺는 것만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비교 때문에 상처받았던 그 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교라는 거울을 벗어나 바라보면 그 모든 것이 세상에 단 한 번만 피는 꽃이었다.


어린 왕자의 슬픔은 내가 살아오며 겪은 수많은 비교라는 그림자였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비교는 불안으로 찾아왔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가진 것들이 점점 초라해 보였다. 비교의 함정은 내가 가진 것은 작게 만들고, 남의 떡이 커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에서 비교할 것은 어제의 나일뿐 그 무엇도 아니라는 걸 안다. 비교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 지. 내 행복을 그 비교와 바꾸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아깝고 소중하다. 특별함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축복이다.


나는 귀퉁이가 낡고 손때가 묻은 사진첩을 꺼냈다. 그 사진 속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절대적인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 순간들은 내 인생에 피어난 한 송이 장미였다.


이제는 어디서든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비교하지 않아요.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나일뿐, 세상의 그 무엇도 아니랍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진 나, 그걸로 충분해요"


풀밭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어린 왕자의 손을 잡았다.


"자, 이제 여우를 만나러 가자"


그의 온기가 손끝에서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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