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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품고 있기 때문이야

by 담서제미

달은 어느 때보다 묵직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달은 둥그런 얼굴로 사막을 비추고 있었다. 별들은 그들의 언어로 반짝거렸다.


나는 어린 왕자 곁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별빛처럼 맑고 우물처럼 깊었다. 하지만 그는 지쳐 보였다. 우리는 밤새도록 걸었다. 사막에서 들리는 건 우리의 숨소리뿐이었다. 걸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모래는 우리 마음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사막의 침묵. 그것은 너무도 깊고, 투명해 손끝만 대도 사라질 것 같았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가 입을 열었다.

"그 안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댄 건 그 순간이었다. 찾으려 할 때는 그렇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우물. 그 존재만으로 사막은 더 이상 황량하지 않았다.


"삶도 그래. 어딘가에 우물을 품고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가장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


그는 늘 이렇게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오밀조밀한 작은 입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시간을 멈추고 내 마음을 젖어들게 했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너는 왜 그렇게 장미를 사랑하니?"


내가 묻자, 그는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행복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것은 내가 그 꽃을 위해 바친 시간이 나와 그 꽃을 이어 주기 때문이야."


그가 왜 그렇게 그의 별에 있는 장미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랑은 상대가 무조건 예뻐서가 아니었다. 그를 위해 바친 시간과 마음이 나를 온통 바꿔 놓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시간 동안 내 마음이 더 깊어진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들어 있는 어린 왕자를 바라보았다. 작고 가녀린 이 아이가 마치 사막에 불을 밝히는 등불 같았다. 어떤 모래바람에도 쉽게 꺼지지 않은 존재.


나는 그가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한 송이 꽃에 바치는 성실한 마음이, 지키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이 사막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는 장미의 가시 하나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뾰쪽한 가시가 외로움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까지.


그에게 사랑이란 한 송이 꽃을 위해 사막 전체를 건너는 일이었다.


서서히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하늘은 푸른 바다를 안은 것처럼 퍼져갔다. 사막의 그림자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우물이었다.


그건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맑고 깊은 우물이 새벽 햇살 속에서 반짝였다.


그가 말했다.

"이거 봐. 우물이잖아.."


그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우물 속 물보다 더 투명하고 맑았다. 그 웃음의 힘으로 다시 걷기로 했다. 그 우물이 있어 다시 살기로 했다.


"할머니의 사막은 뭐야. 그 안에 숨어 있는 우물을 찾아본 적이 있어."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는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외롭다고 느끼면 그건 우물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사랑은 그 사람 안의 우물을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걸.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을 사막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겉은 쩍쩍 갈라져 메말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 믿음을 지키며. 그것은 그 아이가 나를 길들였기 때문이었다.


삶을 유지하는 건 물이지만 삶을 살아가게 하는 건 마음이었다. 작은 잔 하나에도 사랑이 담기면 그것은 생명이 된다.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의 우물이 되어주는 일이자, 때때로 그 우물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었다.


혹시 지금 세상이 메마르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우물을 발견하라는 신호다. 그 덕분에 우리는 매일 우물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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