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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서제미 Jul 18. 2024

모든 것이 지나가더라 1

행복도 고통도 순간일 뿐

예고대로 '돈 좀 바꿔주세요'라는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글이 나오질 않았다.  


가슴속에서 삭을 대로 삭아 버린 언어가, 마삭줄로 꽁꽁 묶어서 밀봉해 놓은 뚜껑을 열고 터져 나왔다.


그건 미처 예상치 못한 거였다. 


수요일.

나를 위한 문화의 날, 오전에 캘리그래피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평소보다 15분 일찍 집을 나섰다.


공원입구에 자리 잡은 배롱나무를 보고 싶었다.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 꽃잎에 코끝을 대 보기도 하고 눈에 담아 보는 재미는 날마다 새로웠다. 


배롱나무 꽃이 세 번 피었다 지면 쌀밥을 먹는 계절이 돌아온다는 친정엄마 말이 사실인 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날마다 배롱나무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신선했다. 어제는 꽃봉오리였던 것이 밤새 꽃으로 피었다.  


이것을 피우기 위해 몸살을 앓았을 꽃이 대견해 '애썼다, 너도 피어나느라'한마디 해주고 놀이터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건 찰나였다.

갑자기 가슴속으로 훅하니 들어온 바람한줄기. 예고 없이 쳐들어온 불청객 같기도 하고 서늘한 칼날 같기도 했다.


나에게 이 세상에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나일뿐, 남들과 비교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알려주신 할머니가 앉았던 

의자 옆 나무에 기대서 있는 싸리빗자루하나.


그걸 본 순간,  깊은 우물 속에 잠겨있던 기억 한 자락이 봉인해제되었다.  나풀거리는 것이 싫어 여러 겹 싸서 꽁꽁 숨겨두었던.


그날 기억은 어제일처럼 뚜렷했다.  너무 선명해 손톱밑에 파고든 가시처럼 온 신경이 그곳으로 향했다.


1997년 4월 어느 날.

시인 엘리엇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그 4월이 나에게 왔다.


광주인력은행 사무실에서 구인구직만남의 날 행사준비가 한창일 때였다.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남편회사 직원이었다.


"부장님이 다치셔서 병원에 계시는데요"

"아, 그래요. 많이 다친 건 아니죠"


"그게, 사모님이 오셔야 될 거 같아요"

"많이 다친 거 아니면 제가 행사가 있어서 사무실에서 나갈 수 없는데 어쩌죠"


"꼭 오셔야 됩니다"


꼭 오셔야 된다는 그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택시를 기다리는데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주먹을 꽉 쥐어도 떨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남편에게 가는 길,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래, 나는 과부 될 팔자는 아니야, 괜찮을 거야, 그래, 괜찮지'라는 생각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병원응급실에 도착해 남편을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넓은 것도 아닌 응급실을 서너 바퀴 돌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전화를 잘못 받았을 수도 있어. 그 전화가 어쩌면 꿈이었을 수도 있어'라며 막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응급실 맨 가에 누워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몸에 있는 피가 모두 빠져나가버린 듯, 백지보다 더 하얀 얼굴,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은, 그건 분명 남편이었다.


막상 남편을 보자,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전까지 오만 가지 생각이 오가던 머릿속도 덜덜 떨던 손도 거짓말처럼 말짱해졌다


다친 남편을 붙잡고 이렇게 됐냐고 봤자 사고 나기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워낙 피를 많이 흘러 큰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수련의과정을 밟고 있던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이 비행기를 타고 바로 달려와 주었다.  


남편 사고는 눈 깜짝 사이에 일어났다고 했다.


강철로 만든 철판을 트럭에서 내리던 중 철판을 묶고 있던 끈이 끊어져 남편 왼쪽 발목을 처 버렸다. 만약에 운동신경이 둔했다면 바로 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재빨리 피해서 몸이 아니라 그나마 발목으로 떨어졌다며 남편 회사 직원은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그것은 남편이 할 일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을 하는 자신이 하는 일이었는데 도와주다 그렇게 된 거라며.  


오후 7시에 수술실에 들어간 남편은 새벽이 되어도 나오질 않았다.  4월 수술실 밖은 추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온몸이 떨렸다.  발끝에서 시작한 냉기는 머리끝까지 휘감고 있었다.  


왼쪽 발목 쪽이니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 여겼다.  단지 사고 후 대응이 적절하지 않아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수혈을 하느라 힘들거라 생각했다.  


아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저 추웠다.  너무 추워서 어서 빨리 남편이 수술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나는 34세, 남편은 36세였다.(다음 편에 이어서)


에필로그) 아, 싸리빗자루가 왜, 꽁꽁 숨겨둔 기억을 봉인해제 했냐고, 읽다 보면 나온다.  이 글이 몇 편까지 갈지 나도 모르겠다.  2편에서 끝날 지, 더 이어질지, 갑자기 미친 듯이 글들이 튀어나와 손가락 춤을 추기 시작하면 끝이 어디인 지 종잡을 수가 없으니.  그저, 글춤이 끝날 때까지 가다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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