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인생이 있었다.

미플러스 포 우리의 놀이터

by 담서제미

그곳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있었다. 1200평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동백 100그루. 그것은 그저 동백나무라고만 부를 수 없는 형부의 삶이 스며들어 있었다.


미플러스포 네 여자가 여행을 떠나는 날. 막내는 개인 일정이 있어 같이 하지 못했다.


오늘, 미플러스포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세 여인의 웃음소리에 한 사람의 삶이 스며들었다. 맏언니의 남편, 함평에는 형부의 삶이 있다. 그곳에는 형부가 평생을 품어온 동백나무가 있다. 최소 수령이 50년에서 최고 수령 400년이 넘는. 형부는 이곳에서 동백나무가 아닌 한평생의 삶을 가꾸는 정원사다.


6만 평 목장주였던 형부에게 불운이 닥친 건 전두환정권시절 찾아온 소 파동이었다. 아무리 부도를 막으려 해도 터져 버린 둑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부도가 나 버렸다. 그때도 형부는 동백나무를 지켰다. 어떤 이는 동백나무를 팔아서라도 빚을 갚아야지, 나무를 지키고 있다며 손가락질을 했고, 어떤 이는 헐값에 그 나무를 사들이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형부는 나무만큼은 팔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곧 자신을 파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킨 동백나무였다. 올봄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흥에 있던 동백나무를 함평으로 옮겨 심었다. 그곳이 우주센터로 편입이 되어 버린 바람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봄에 심어진 나무는 잎하나 없이 앙상했다. 허허벌판에 심어진 나무를 보면서 사막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이국적이던 지 마치 이곳이 소행성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봄, 여름 두 계절을 지나고 다시 찾은 동백나무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강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었다. 형부의 삶이 이처럼 푸른빛으로 살아난 것이다.

KakaoTalk_20250916_195805286.jpg

오랜 세월을 지켜온 그 나무가, 이제 형부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 웅장하게 꽃을 피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나무들은 새로운 땅에서도 여전히 형부의 손길과 발길, 땀을 자양분 삼아 쭉쭉 뻗어 나고 있었다. 형부는 매일 흙을 고르고, 가지를 다듬고, 물을 주며 나무 곁에 머물렀다. 때론 손톱 끝까지 흙이 스며들어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바람이 잎사귀를 스치며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동백이 뿌리를 내리고 새 잎이 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웃고 울었다. 좋아서 울고, 지난했던 과거가 떠올라 울었다. 그 눈물에는 고통만이 아니라, 버티고 살아낸 자신에 대한 경외가 있었다.


그 동백나무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흔한 동백나무가 아니었다. 나무마다 형부의 세월과 추억이 있었다. 부도가 나 모든 걸 잃을 때조차, 형부는 이 나무들을 버리지 않았다. 경제적 고통이 몰려올 때에도, 인간관계가 흔들릴 때에도, 삶이 사막 같아질 때에도 그는 동백나무들을 지켰다. 그것이 그의 희망이었고, 숨결이었다. 나무를 지키는 것은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나무 한 그루 한그루에 서린 추억은 흑백영화를 보는 듯했다. 누나가 시집갈 때 네 귀퉁이에다 동백꽃을 꽂아줬다는 그에게 동백나무는 곧 자신이었다.


미플러스포의 발길도 이곳에서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함평의 공기와 바람, 동백나무가 우리의 마음까지 정화시켰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형부의 삶이 고스란히 새겨진 ‘인생정원’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이 이제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네.”

"우리 오래오래 같이 놀아야 되니 건강하셔야 되는 거 아시죠."


어른이 되어서도 놀이터가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우리 마음도 그 순간 동백꽃처럼 열렸다.


삶이란 결국 돌보고, 심고, 기다리는 것이라는 사실. 인간관계도 그렇고, 꿈도 그렇다. 돌보고 기다린 만큼 꽃이 핀다. 꽃이 지는 것도 받아들이고, 다시 피어날 때를 준비해야 한다. 동백숲에서 우리는 ‘지킨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배웠다.


형부는 동백나무 숲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동백나무는 나 자신과 같으요. 내년이면 이 곳에서 동백나무에만 찾아온다는 새, 동박새도 볼 수 있을 거요." 나무 하나 하나가 어떻게 새 잎이 나고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 그는 나무들과 교감을 하고 있었다.


"잎이 연한 것은 아직 뿌리가 덜 내린 것이고, 잎이 진한 것은 이제 땅에 정착을 한 거요." 400년 세월을 지나 또 다른 터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목 앞에서 나는 "더 단단해져서 내년에는 꽃으로 만나자" 며 나무를 어루만졌다.


돌본다는 것, 지킨다는 것, 다시 피어난다는 것. 동백숲이 우리에게 알려준 건 바로 그런 삶의 순환이었다. 흙냄새와 동백나무 향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 향기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다시 생각했고, 마음속에 작은 약속을 새겼다.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의 삶에 이런 ‘숲’을 만들어 줄 수 있기를.


<깨달음 한 줄>

“삶도 꽃처럼, 돌보고 지키면 언젠가 다시 피어난다.”

매거진의 이전글고작 한 주 안 갔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