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스무 살의 문장
3월 한 달 내내 다른 글 퇴고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글을 다시 끄집어냈다. 한동안 거리를 두고 묵혀둔 덕분일까, 이전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전체적인 글의 흐름과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썼지." 한숨이 나왔다. 다듬고 또 다듬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문장의 숲 속에서, 나는 길을 찾기 위해 온종일 그 덤불을 헤치며 시간을 보냈다.
문장을 갈고닦는 틈바구니로 문득 왕버들의 안부가 스치듯 지나갔다. '그 나무에 새 잎이 돋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잠시 고개를 들었으나, 내 앞에 현실이 더 다급했다. 고치고 또 고치며 다듬어가는 무한 반복의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왕버들의 푸르름을 걱정하는 마음보다 내 눈앞의 문장들이 더 치열했다.
삼십 년간 직업상담 현장을 지키며 내가 입버릇처럼 외치던 말이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입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결코 위태롭지 않다는 그 명징한 진리를, 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이토록 적용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일까. 남의 생은 그토록 정교하게 분석하고 조언했으면서, 정작 내 글과 내 삶의 좌표 앞에서는 이토록 서툴고 무력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음을 온몸의 감각으로 감지한다. 비록 어정쩡한 경계에서 방황하고 드라마 속 허구의 세계에 나를 던져두기도 했지만, 다시 펜을 잡은 이 순간의 무게감이 나를 단단히 지탱해 준다.
나의 '세 번째 스무 살'은 겉보기엔 고요한 호수처럼 보이겠지만, 그 수면 아래에서는 누구보다 맹렬한 발길질이 계속될 것이다. 그 끝이 비록 부질없는 물거품일지라도, 스스로를 깎아 문장을 빚는 이 고독한 시간에 나는 기꺼이 나의 남은 생을 걸어본다.
그녀가 다시 자신만의 좁고 깊은 동굴로 돌아가 치열한 싸움을 시작했음을, 나는 바람결에 실려 오는 잉크 냄새와 팽팽한 긴장감을 통해 단번에 읽어낼 수 있었다. 며칠 전 내 가지를 붙잡고 새순의 기미를 찾으려 안달하던 그녀의 시선은 이제 자신의 내면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고 있었다.
나무의 세계에서도 가장 단단한 깊은 속살을 만드는 법은 스스로를 깎아내는 고통을 견디는 일이다. 그녀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썼지"라며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다듬는 행위는, 나무가 지난여름의 비대했던 물살을 걷어내고 겨울의 혹한을 견디며 나이테를 압축하는 과정과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타인에게는 밝은 빛을 내어주는 등불이었으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그 모순이야말로, 진정한 창작자의 숙명이자 고귀한 형벌임을 확인하고 있었다.
내 몸에 새순이 돋았는지 살필 여유조차 없이 원고에 매달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나무가 잎을 틔우기 직전 모든 에너지를 뿌리에서 줄기 끝으로 집중하듯, 그녀 또한 지금 자신의 영혼을 한 점의 문장 위에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고요하면서도 맹렬할 거야."
그녀의 나직한 다짐이 밤공기를 타고 내 빈 몸통을 울렸다. 수백 년을 버텨온 나의 생도 겉으로는 정지된 듯 고요해 보이지만, 속살 안쪽에서는 수액을 밀어 올리는 맹렬한 투쟁이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세 번째 스무 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나는 내 몸에 새겨진 수백 개의 나이테를 흔들어 지지해 주었다.
그 끝이 설령 부질없는 낙엽처럼 떨어진다 해도 무슨 상관이랴. 자신을 온전히 불태워 한 줄의 진실을 건져 올리는 그 과정 속에 이미 생의 모든 보상이 깃들어 있음을, 그녀는 이 지독한 퇴고의 밤을 통과하며 묵묵히 증명해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창가에 머무는 달빛을 조금 더 선명하게 닦아주며, 그녀가 빚어낼 가장 맹렬한 초록의 문장들을 가만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