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그렇게 아픈 데 다 나으면 써요."
"왼팔만 다친 게 아니라 오른손도 상처투성이잖아요."
주차장턱에 걸려 넘어진 왼팔은 다행히 뼈가 부러진 건 아니었다.
인대가 늘어나 반깁스를 한 왼팔은 다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퉁퉁 부어 있다.
시멘트바닥에 찧은 턱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오른손등은 상처를 감싼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왼팔은 있지만 제대로 쓸 수가 없고 오른손도 상처투성이니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 상태에서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독수리타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으니 다 나으면 하라는 거다.
손이 아프면 음성을 활용해 글을 쓰면 된다고 해서 몇 번 시도를 했었다.
해 봤더니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
글이라는 게 손가락으로 모음과 자음을 조화롭게 연주하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입으로 쓴 글에서는 손가락 맛이 나질 않았다.
팔의 통증이 심할 때 몇 번 시도하다 '글은 손끝에서 나와야 제 맛이야'만 더 깨닫게 되었다.
펜 끝에서 나오는 글맛, 하다못해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하모니가 심장과 머리를 거쳐 손끝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머리에서 입으로 바로 나와버린 글에서는 리듬이 없었다.
덕분에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생애 최고 맹활약을 하고 있다.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림의 고수처럼 자판기를 휘젓고 다닌다.
육십앓이
이런, 이런, 검지손가락이야기가 주가 아닌데 잠시 옆길로 샜다.
나을 때까지 손을 덜 써야 되니 글쓰기를 잠시 쉬면 안 되냐는 거였다.
통증이 심할 때는 그럴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7월 말부터 8월까지 한 달가량 유럽여행을 다니는 동안 글쓰기를 멈췄다.
머릿속으로는 하루에도 몇 편씩 글을 썼지만 손끝으로 쓰지 않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안에는 마음이 무너진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시때때로 동굴 속을 탐험하는 육십앓이가 그 안에 둥지를 틀었다.
모태 속 태아처럼 웅크린 채, 깊숙이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윌리엄제임스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라고 했다.
힘들어도 웃으며 살았다. 그것은 또 다른 가면이었다.
아프면 아픔이 치유될 시간을 충분히 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어야 돼, 긍정의 힘을 믿어'라며 긍정파워만 끌어올리려 했다.
그러다 보니, 들여다봐야 할 돌봐야 할 아픔은 저 밑바닥으로 들어가 숨어 있었던 거다.
그것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퇴직 후 육십이 되어서야 육십앓이로 나타났다.
동굴 속에 우물을 판 채 웅크리고 있는 나를 다독이며 어루만지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는 위로의 시간들이었다.
육십 평생 살아오느라 애썼다.
스스로 쓰담쓰담해 주는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내 육십앓이가 제대로 보였다.
아픔에게도 시간을 주자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든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부정적인 것은 버리고 긍정적으로 되라고만 한다.
그 부정과 힘듦을 딛고 일어나야, 긍정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접어두고
힘든 일이 생기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다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생각해'라고.
나도 그랬다. 지금까지.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진 않는다.
그 부정적인 것과 힘듦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원인 치료를 먼저 한 후, 그때부터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나아갈 것은 나아가자고 한다.
이건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이자 치유였다.
그러다 보니 양손이 다쳤음에도 덜 다친 오른손 손가락 검지를 활용해 글쓰기를 놓지 않게 된 거다.
마음이 동굴 안에 갇혀 있으면 그다음은 몸이 반응을 한다. 이곳저곳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심지어 자주 넘어지기도 한다.
조심해야지.
아무리 되뇌어도 넘어지는 것도, 다치는 것도 순간이다.
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나이가 44세와 60세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40대 중반과 60대 초반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진은 '에이처 에이징'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노화가 균일한 과정이 아닌 '연령 관련 파동'처럼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그래 맞아, 그런 거 같아'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육십앓이가 자연스런 현상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다.
이제부터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치유할 충분한 시간을 주자.
그래야 긍정의 꽃이 훨씬 더 탐스럽게 피어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