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다른 이름은 희망
크리스마스 전날 밤 영화 '하얼빈'을 봤다. 그 밤 영화를 보고 온 이후부터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대사가 있었다. 잠들기 전에도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 순간에도 나보다 먼저 달려와 내 의식을 두드렸다.
나는 영화평을 쓰려고 한 것이 아니다. 단지 '하얼빈'을 보고 난 이후 내 뇌리에 새겨진 대사를 다시 한번 더 새김질하려고 할 뿐이다.
내 뇌리에 박힌 대사는 3개였다.
"길을 잃었습니다"
같이 싸우던 동지들이 죽어나가고 독립의 길은 험난하고 멀게만 느껴져 때때로 길을 잃기도 했지만 그들은 결코 길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고뇌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잃어버린 길을 독립의 길로 만들었다
두 번째는 이토 히로부미가 했던 말이었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한 나라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나라를 지킨 것은 과거에도 현재도 백성과 국민이었다.
세 번째 반복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대사는 영화 마지막에 안중근(현빈)이 한 내레이션이었다. 대사 하나하나가 몸과 마음에 새겨졌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 서는 아니 된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나는 영화 '하얼빈'의 명대사를 이 새벽에 꾹꾹 눌러 다시 새기며 나의 40대를 소환했다.
아래 글은 2008년 2월 19일 화요일 광주드림에 기고했던 글이다. 16년 전 내가 2024년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정말로 힘든 사람은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해요. 너무 힘이 들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보면 꺼억꺼억 목 안으로 넘어가는 울음을 토하며 자신의 가슴을 치잖아요. 속에서 불이 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밖에 표현을 못 하는 거예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나 힘들어, 너무 힘이 들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토해내면서 이겨가는 거예요. 취업에 대한 고민만 해결해 주는 곳인 줄 알았는데 가슴속에 쌓인 울음까지 들어주시네요"
너무 힘들 때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 피하고 살았다는 P 씨는 두 시간이 지나도록 가슴속에 먼지처럼 쌓이고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심층상담 전담자로 업무를 옮긴 후 첫 번째로 만난 구직자였다. 심층상담 전담제는 2008년 2월 1일부터 고용 지원센터(현 고용센터)에서 진행하는 취업지원 서비스였다. 현재 고용센터에서 하고 있는 구직자 일대일 취업지원 서비스의 토대가 된 것이기도 하다.
구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원인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맞춤형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였다.
돌이켜보니 그때 당시 그녀의 사정은 절박했다. 이혼 후 두 아이를 키우려면 당장 시급한 것이 취업이었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그녀가 일할 만 곳을 찾았다. 혼자서 면접을 보러 가기 힘들다고 하면 내 차에 태우고 면접장을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이혼하기 전까지 전업주부로 살았던 그녀에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금요일 퇴근 무렵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월요일까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내야 할 곳이 있는데 자기소개서를 좀 봐 주세요"라고 했다. 마침 살고 있는 곳이 우리 집에서 가까워 주말에 만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클리닉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녀는 그곳에 취업을 했다. "저 취업했어요. 선생님 덕분에" 고맙다며 울먹이던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2008년 나는 구직자들이 원하면 주말에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비롯한 면접 클리닉을 했다.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결책을 같이 찾아나갔다.
심층상담 초창기라 그것이 무엇인 지 구직자들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심층상담에 들어올 구직자들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때 느낀 건 아는 만큼 보이고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눈 감고 귀를 막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에 반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길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나갔다.
희망은 절망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 나무였다. 절망을 느껴본 사람만이 희망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희망 또한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선택한 사람은 행복했고 불행을 선택한 사람은 불행했다.
절망의 다른 이름은 희망이었다. 이것은 2008년에도 2024년에도 앞으로도 변함이 없는 진리다.
202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본 영화 '하얼빈'의 마지막 안중근(현빈)대사는 절망을 어떻게 희망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대사를 다시 새긴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 서는 아니 된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