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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변하지 않은 것은

실직가장의 버팀목은 가족의 지지와 응원

by 담서제미


'오늘은 28년간의 기록, 내 삶은 직업상담 관련 글을 써야지. 이젠 쓸 때가 되었어'


새해 들어 직업상담 관련 글을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계속 미뤘다. 이제는 2005년과 2006년 이야기를 써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면 글이 되어 나오곤 했는데 단 한자도 쓸 수가 없었다.


2005년과 2006년에 모아둔 파일을 앞에 두고 한 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목 안에 통증이 밀려왔다. 그때 기록들이 여전히 아프게 하는구나. 결국 그 자료를 덮었다. 아직은 내가 쓸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언젠가는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남겨두고 2008년 1월 22일 광주드림에 썼던 글을 꺼냈다. 그 글에는 내가 만났던 사오십 대 실직 가장들의 모습 들어 있었다. 그때 기록 중 일부를 옮긴다. 아래 글은 그때 당시 사 오십 대 실직 가장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더 들어가 보면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 진 것은 없다.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 전반이 불확실했던 시기였다. 당시 고용시장은 신입사원 중심 채용이었고 중년층에게는 재취업의 문턱이 높았다. 사회적으로는 가장의 경제적 책임이 강조되었고, 실직은 개인적인 실패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 교육에도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였다. 평생직장이라 여기며 다녔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직장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내몰린 사오십 대 가장들 그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직업상담을 하면서 그분들과 어느 정도 라포가 형성되면 한결같이 했던 말이 가족의 지지와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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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2일 광주드림 기고문


실직 가장의 버팀목 '가족'


불도저처럼 앞으로 나아가기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기에도 애매한 나이 사오십 대.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양어깨에 진 채 턱까지 차오른 숨을 뱉어내지도 못하고 혼자서 삭이는 사오십 대. 자기의 정체성 중 돈 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오십 대 가장들이 느끼는 실직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재정적인 압박과 이전 직장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일수록 실직으로 인한 고통을 더 받는다. 이십 대 후반부터 성인기를 온통 회사에 바친 사람은 본인이 퇴직을 예상하고 있었더라도 충격을 더 받는다는 통계도 있다. 중장년층의 실직은 심리적인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듯한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중장년 구직자에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가족이다. 특히 아내가 가장의 실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이후 결과가 달라진다. 나를 찾아온 대부분의 가장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호소는 가정불화였다.


"돈을 벌기 싫어서 안 버는 것도 아니고, 취업을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집사람이 대 놓고 막말을 할 때면 이것도 저것도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실직에 대처하는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매번 느끼게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집사람이 지금은 잠시 재충전하는 시기라 생각하고 조금만 더 힘을 내자며 다독여 주면 없던 힘도 생기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힘든 마음에 불까지 지르니 이것은 집이 아니라 지옥이다"라며 한숨을 쉬는 중장년 구직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실직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실직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다. 속상해한다고 해서 이미 일어난 일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 일로 가정 전체가 불화에 휩싸이기보다는 한 박자 여유를 가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이해와 지지는 필수다.


루이스 헤이는 <치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면 즐거운 생각을 해야 한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성공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랑하며 살고 싶으면 사랑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라고


남편의 실직으로 당장은 힘이 들겠지만, '내 남편은 반드시 재취업에 성공할 거야"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자신은 물론 남편을 살리고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아무리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아내의 따뜻한 격려로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내는 사례를 볼 때마다 실직에 대처하는 가족의 지지가 얼마나 큰 힘인지 알게 된다. 실직 가장의 가장 큰 버팀목은 가족. 특히 아내의 지지와 응원은 이후 삶이 달라지는 가장 큰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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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도 2025년인 지금도 실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무겁다. 사오십 대 가장에게 실직은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돌처럼 다가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무게를 견디게 하는 건 가족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모든 걸 삼키던 그해, 명예퇴직을 당해 집으로 돌아온 한 가장이 있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 순간, 어린 딸이 다가와 "아빠, 그동안 바빠서 나랑 못 놀아줬으니 이제 나랑 같이 놀아요."라는 그 한마디가 자신을 붙잡았다.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아내가 딸을 시켜 자신을 다독여 준 것이었다. 그 말은 들은 순간 적어도 가족에게는 여전히 쓸모가 있구나라는 사실에 눈물이 핑 돌았다.


2025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제 유물이 되다시피 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실직은 이제 어느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두 시대 가장은 다르지만, 그들 삶을 감싸는 가족의 사랑은 똑같았다. 실직이라는 단어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괜찮아. 당신이라서 괜찮아." 이 말의 힘은 2008년에도, 2025년에도 여전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그 가장이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가족의 응원은 시간도, 환경도, 경제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깊은 힘이다.


그 힘이 있기에 실직 가장들은 다시 일어선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가슴에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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