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따뜻했던 내 어린 날

연탄불과 도시락

by 담서제미


겨울이 되기 전 부모님이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리어카 가득 연탄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연탄이 집 앞에 도착하면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되어 연탄을 날랐다. "깨지면 안 되니 오지 말아라"라고 부모님은 말씀하셨지만 연탄을 나르는 것이 재미있었다. 부모님도 나도 동생들도 얼굴과 손에 연탄 범벅이 되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깔깔거렸다. 웃으면서 하나씩 나르다 보면 부엌으로 들어가는 벽에 부모님 키보다 더 높이 연탄이 쌓였다.


연탄 더미는 작은 성벽처럼 보였다. 숨바꼭질을 할 때면 쌓아놓은 연탄 옆에 생긴 작은 틈에 숨었다. 아무도 못 찾을 거라 여겼지만 그 장소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까만 연탄이 옷에 묻을까 봐 늘 조심했지만 숨바꼭질이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시커먼 연탄이 옷 곳곳에 묻었다. 부모님은 연탄이 넉넉하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겨울 걱정이 덜어진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행여나 불이 꺼질까 봐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갈았다. 시간이 늦어 불이 꺼지면 번개탄을 그 위에 올리셨다. 행여나 자식들이 추울까 봐, 연탄불에 온 신경을 집중하셨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라 여겼다. 불길이 약해지면 신문지를 둥글게 말아 불씨를 붙이기도 했다. 연탄이 화덕 속에 들어가면 방 안은 점점 따뜻해졌다. 방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고,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연탄에 의해 따뜻해진 한 칸의 방은 침실이자 식탁이자 공부방이었다.


어머니는 연탄불 위에서 시골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구워 주기도 했다. 까맣게 타버린 고구마를 벗기면 그 안에서 노랗게 익은 고구마의 속살이 드러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후후 불며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달콤한 맛이 퍼졌다. 손가락 끝에 그을음이 묻어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았다. 어쩌다 연탄불에 석쇠를 올리고 구워주는 돼지고기 맛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다. 연탄불 위에서 태어난 음식들은 모두 특별한 맛이 났다.


노랗게 반짝반짝 윤이 나는 도시락도 늘 연탄불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이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하러 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다. 아버지가 아침을 드시고 일을 하러 가시면 어머니는 우리들 도시락을 싸서 철망을 깐 연탄불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것을 품에 안고 학교 가는 길, 겨울바람 속에서도 손은 따뜻했다.


학교 가면 제일 먼저 교실 뒤편 연탄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금빛 철제 도시락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눌어붙은 누룽지는 꿀맛이었다. 반찬이 변변치 않아도, 친구들과 함께 먹는 따뜻한 밥 한 끼는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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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불은 온기이자 위험하기도 했다. 라디오에서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수시로 나왔다. 동네 누구도 연탄가스중독으로 고생했더라는 말을 하시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는 곳이 없는지 늘 점검을 하셨다. 가끔씩 연탄가스가 새어 나오면, 어머니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연탄가스 마시면 큰일 난다"라는 말을 듣고 겁이 나기도 했지만 들을 때뿐이었다.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며 나는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상상 속에서 책 속에 주인공이 되었다. 한겨울, 방문을 꼭 닫고 온돌방에 들어가 있으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포근함이 우리를 감싸주었다.


그때 그 시절, 연탄은 우리 집의 중심이었다. 가족을 모이게 하는 따뜻한 불씨였다. 방바닥이 따뜻해지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동에 지친 아버지가 연탄불에 따뜻하게 데운 물로 씻고 들어와 우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곳. 겨울에도 돈벌이가 될 만한 부업거리를 들고 방 안에 앉아 일을 하시던 어머니. 그때 그 풍경이 오늘처럼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 날이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연탄불의 온기가 식어갈 때면, 집 안은 점점 차가워졌다. 우리는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왔다는 두툼한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둘러쓰고 그 안에서 장난을 쳤다. 그 사이 어머니는 연탄불을 조절하며 가족이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도록 하셨다. 깊은 밤이면 차가운 방안 공기에 코끝이 빨개졌지만 방바닥은 뜨거웠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했다.


이제는 연탄을 쓰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연탄 불로 고기를 구워주는 식당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연탄 속에 들어 있던 따뜻함과 그 위에서 익어가던 고구마와 도시락, 무엇보다도 가족이 모여 앉아 나누던 이야기들.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연탄불이 주는 온기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 그 온기는 지금도 내 가슴속 깊이 남아있다. 오늘처럼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날이면 문득 1970년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내 어린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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