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내 여덟 설 구정 전 날
"오메, 오메, 이를 어쩐다냐"
엄마는 '아이쿠'대신에 '오메, 오메, 이를 어쩐다냐'라는 말을 먼저 하셨다. 빙판이 되어 버린 눈 길 위에는 넘어진 엄마와 쏟아진 쌀, 양은 대야가 가난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늘처럼 눈이 사선으로 흩날리던 내 여덟 살 구정 전 날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대야에 가득 받아놓은 수돗물에는 얇은 얼음이 끼어 있었다. 창문은 하얗게 얼어붙었다. 연탄불이 꺼질까 봐 새벽마다 연탄재를 털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설 명절을 앞두고 대설이 내려 시골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다. 엄마는 “떡국은 꼭 먹어야 한다"라며 동네 가게에서 쌀 한 되를 사 오셨다. 떡국을 만들려면 쌀을 방앗간으로 가지고 가야 했다. 물에 불린 쌀을 양은 대야에 담고 방앗간으로 향하는 엄마의 손길은 분주했다.
“춥다, 오지 말고 집에 있어.”
추우니 오지 말라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방앗간에서 쌀이 가래떡이 되어 나오는 광경은 신기했다. 마치 기계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가래떡은 모락모락 수증기를 타고 내려왔다. 그 모습을 볼 생각에 신이 난 나에게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랑 나는 빙판이 되어버린 길에서 비틀거렸다. 빙판길보다 신발이 더 미끄러웠다. 엄마는 행여나 내가 넘어질까 봐 한 손으로는 내 손을, 한 손으로는 쌀이 든 양은 대야를 들고 계셨다. 그건 순간이었다. 엄마가 넘어진 것은.
손을 떠난 양은 대야는 쌀알을 쏟아냈다. 눈밭 위로 하얀 쌀이 흩어졌다.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엄마는 아픈 내색도 하지 않고 허둥지둥 쌀부터 주우셨다.
“오메, 오메, 떡국 쑬 것인디.”
엄마는 떨어진 쌀을 빨갛게 언 손으로 조심스럽게 쓸어 담았다. 쌀알 사이사이로 눈이 섞여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엄마 눈가에 고드름이 맺힐까 봐 무서웠다. 울컥하는 마음을 꾹 누르며 엄마를 따라 쌀을 주웠다. 대야에 담긴 쌀은 원래의 반도 되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쌀보다 더 흰 눈이 내리고, 엄마와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는 소매 끝으로 얼굴을 닦고 “이거라도 가지고 가자"라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는 그날 엄마에게 묻지 못했다. “엄마, 안 다쳤어?”라고.
방앗간에 도착한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이 섞인 쌀을 씻었다. 기다리고 있던 동네 아주머니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셨다. 방금 전까지 빙판길에 넘어져 손을 다치고, 소중한 쌀을 잃어버렸던 사람 같지 않았다. 엄마가 성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보였다.
그날 밤, 엄마는 긴 가래떡을 떡국 끓일 크기로 써셨다. 설 날 아침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떡국을 끓이셨다. 엄마는 미리 만들어 놓은 닭장국 안에 떡을 넣으셨다. 진한 국물 속에서 하얀 떡이 동동 떠올랐다. 나는 한 입 떠먹으며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았다. 빨갛게 부어오른 엄마 손등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상에 빙 둘러앉아 떡국을 먹고 있는 우리는 바라보고 있는 엄마 얼굴은 웃고 있었다.
70년대의 가난은 일상 속에 녹아 있었다.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를 만큼 모든 것이 귀했다. 그에 비하면 2025년인 지금은 모든 것이 풍족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와 다른 결핍을 말한다. 비록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해진 2025년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다른 종류의 결핍 속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엄마 같은 사람들이다. 추위와 가난 속에서도 웃으며 떡국을 끓여 내는 그 강인한 마음. 그것이 나를,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언제든 떡국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명절이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떡국을 끓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떡국을 보면 그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함박눈이 흩날리던 겨울, 빙판길 위에 쏟아진 쌀, 빨갛게 언 손으로 쌀을 줍던 엄마, 닭장국으로 끓인 떡국 한 그릇.
엄마는 지금도 종종 ‘오메, 오메, 이를 어쩐다냐’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 쌀을 주워 담고, 웃으며 떡국을 끓이던 엄마처럼, 삶이란 결국 어떻게든 다시 이어지는 것임을. 그 안에서 우리는 또다시 웃을 수 있음을.
2025년 설 명절 아침 풍경 속에는 1970년대 그날, 떡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