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검정고무신에서 하얀 운동화로

또 다른 시대의 변화였다.

by 담서제미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신었던 신발은 검정 고무신이었다. 사계절 내 발을 감싸주던 고무신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미끄러웠다. 한 여름이면 발바닥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좁은 골목길에서 뛰어놀 때도, 동네 산을 휘젓고 다닐 때도 늘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하얀 운동화를 사 오셨다. 고무신만 신었던 발에 운동화를 신은 순간 발등을 꼭 감싸는 운동화는 신세계였다. “와, 운동화가 이런 거구나.” 고무신보다는 무거웠지만 그 자체로 좋았다. 운동화는 늘 내 발보다 컸다. 운동화는 일 년이 지나야 내 발에 맞았다. 우리 동네에서 나와 동생들은 다른 집 아이들보다 운동화를 더 빨리 신었다. 운동화를 신은 내 발을 부러워한 아이도 있었다. 고무신만 신던 도시 빈민가에 운동화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때 당시 동네 아이들이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렸다. 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집마다 보일러를 설치하는 집이 늘어났다. 아버지는 그만큼 바빠졌고 어머니 부업거리도 끊일 새가 없었다. 가정경제는 차츰 나아졌다. 그것은 우리 집뿐만 아니었다. 그 결과, 아이들의 신발도 변하기 시작했다. 검정 고무신을 신던 동네 아이들이 점점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동네에서 고무신이 사라졌다. 검정 고무신을 벗고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또 다른 시대의 변화였다.


운동화는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검정 고무신을 벗고 운동화를 신던 그 시절,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흙길이었던 골목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했다. 먼지 날리던 흙길을 고무신을 신고 뛰어다녔지만, 이제는 포장이 된 길을 운동화를 신고 달렸다. 우리 동네 몇 군데 집에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레슬링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온 동네 어른과 아이들이 좁은 마당에 모여 텔레비전을 봤다. 행여나 김일 선수가 넘어져 있으면 이곳저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일 선수의 무기인 박치기를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것처럼 넘어져 있던 김일 선수는 벌떡 일어나 박치기했다. 어린 시절 김일 선수가 나오는 레슬링은 최고의 경기였다. 그 무렵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하루에도 여러 번 흘러나왔다. 아마 그때였으리라.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했던 것은.


운동화를 신게 되면서 내 삶도 달라졌다. 고무신을 신었을 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골목길에 나가 뛰어놀면 되었다. 아무리 젖어도 수돗물이나 빗물에 씻으면 그만이었다. 운동화는 그것이 아니었다. 새 운동화를 신으면 너무 아까워서 나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신발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조심조심 걸었던 기억이 있다. 운동화가 보편화되면서 학교에서도 운동화를 신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검정 고무신은 점점 사라졌다. 시대가 변하고, 우리도 변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검정 고무신에서 운동화를 신던 그때는 어린 시절 한 장면이 아니라 성장해 가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 발에 검정 고무신이 사라지고 하얀 운동화가 신어진 것이 한 시대를 마감하는 변화의 상징인 것을.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과거 우리가 운동화를 신으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던 것처럼, 지금의 아이들은 더 빠르게, 더 새롭게 변화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떤 신발이든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의지다.


퇴직 후 황톳길을 맨발로 걷다 산 길목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을 봤다. 어린 시절 검정 고무신, 흰 고무신이 아닌 꽃무늬가 그려진 고무신. 그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 나를 떠올렸다. 골목길을 달리던 나, 그 신을 벗어던지고 운동화를 신었던 나. 신발은 변하고, 내 나이도 나무 나이테처럼 선이 그어졌지만,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고무신에서 운동화로, 또 다른 미래로 늘 그렇게 나아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골목길은 우리의 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