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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담은 시대를 읽는 일

본질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

by 담서제미

직업상담을 하면서 살아온 시간은 나에게는 그 자체가 역사였다. 서너 권으로도 모자라는. 대서사였다. 페이지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속에는 시대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직업상담은 단순히 일자리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시대를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였다. 나는 그 다리 위에서 수많은 사람과 걸음을 함께했다.


1996년, 대한민국 최초 직업상담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만 해도 ‘직업상담’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많은 이들이 직업상담을 단순한 취업 알선으로 여겼다. 구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일은 단순한 취업 소개가 아니었다. 꺼져가는 불씨를 지피는 일이었다.


IMF 외환 위기 당시, 직업상담 현장은 절망의 무게로 가득했다.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 좌절한 청년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삼키던 이들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때로는 그 불씨가 금세 꺼지기도 했지만, 그 한 줄기 빛이 누군가의 어둠을 조금은 덜어주었다.


내가 직업상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지만 허탈함을 느끼는 사람, 오랜 경력 단절 끝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내는 주부, 퇴직 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장년.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었다. 상담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력서 한 장, 면접 기술을 넘어, 그 사람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이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걸어주는 동반자였다.


직업상담의 본질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한복판에서 맨몸으로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읽어야 했다. 사회는 빠르게 변했다. 그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직업상담은 수박 겉핥기가 되어 버린다.


2000년대 초반 IT 붐, 2007년 금융 위기, 최근 팬데믹까지. 시대의 큰 파도는 일자리를 뒤흔들었다. 나는 그 파도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과 함께했다. 직업상담 현장은 따뜻한 항구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잠시 머물며 상처를 치유했고 다시 항해를 준비했다.


정년퇴직 후, 나는 미래 직업상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인공지능, 자동화, 디지털 전환. 세상은 계속 변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람’이다.


AI가 적합한 구인처를 찾아주고 다양한 구직기술은 제공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마음조차 헤아려 줄 수는 없다.


미래의 직업상담은 한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여정이 될 것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빠르게 우리 생활을 변하게 할지라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직업상담영역이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할 수 없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고 가는 따뜻한 감정의 교류들이다.


인공지능과 더불어 직업상담이 성장해 가려면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며 따뜻해져야 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그 시대를 앞서가는 선지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직업상담 분야다.


정년퇴직을 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직업상담영역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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