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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는 해가 지는 걸 봐야 해 1

예순의 내가 다시 배운 슬픔을 건너는 법

by 담서제미

'어린 왕자'는 언제나 천천히, 진심을 다해 말을 했다.

"할머니, 슬플 때는 해지는 걸 바라봐야 해."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만히 웃었다. 웃음 끝에 남은 건,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이었다.


예순.

스무 살을 세 바퀴 째 돌고 있는 나이. 삶을 꽤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슬픔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 서툴렀다.


어린 왕자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내 별에서는 해가 질 때마다 의자만 당겨 놓으면 돼. 그러면 금방 석양을 볼 수 있어."

"어느 날,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해넘이를 봤어."


나는 상상했다.

마흔네 번. 하루 동안.

작은 별 위에 놓인 자그맣고 앙증맞은 의자를 조금씩 끌어 옮겨가며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 얼마나 깊은 슬픔이었을까?.


어릴 적 나도 해지는 하늘을 좋아했다. 그 붉은 물결, 보라와 주황이 섞인 하늘은 볼 때마다 신비로웠다. 석양에는 바람에 실린 먼지 냄새가 났다. 거기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의 모습에 때때로 울컥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예순 해를 살면서 몇 번이나 진심으로 슬퍼했을까? 나는 그동안 슬픔이 올 틈조차 주지 않으려 애썼다.


"슬퍼지면 그냥 더 바빠지면 돼."


아픔은 웃음으로 덮고, 슬픔은 나를 채찍질하며 밀어내고, 텅 빈 가슴은 아무것도 아닌 척 지나쳐 온 시간이 많았다. 슬프면 슬플수록 도망쳤다. 내 마음으로부터 멀리, 멀리.


어린 왕자는 달랐다.

"슬플 때는 해지는 걸 봐야 해. 기다려야 해."

그가 말했다.


나는 물었다.

"기다린다니. 무엇을?"


어린 왕자가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슬픔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흔네 번이나.


카를 융은 말했다.

'슬픔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건너는 것이다'라고


어른이 되면 슬픔조차도 빨리 잊어버리라 한다.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일어나야 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웃어야 한다고.


석양은 슬픔의 속성과 닮아 있었다.

매번 같지만, 그 모습은 매번 다른.

어떤 날은 더 붉게,

어떤 날은 옅게,

어떤 날은 천천히 사라지고,

어떤 날은 바람을 타고,

어떤 날은 구름 뒤로 쓸쓸히 숨어들었다.

마치 슬픔도 그렇다는 듯.


슬픔도 어떤 날은 화를 내며 지나가고,

어떤 슬픔은 눈물 한 방울 없이 가슴을 저민다.

어떤 때는 아주 오랫동안 머물다 언젠가 문득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떤 슬픔은 죽는 날까지 가슴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있다.


어린 왕자는 그 모든 슬픔을 의자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기거나 극복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냥, 견디는 것이었다.

그는 해넘이를 바라보며 온몸과 마음으로 슬픔을 건너고 있었다. (목요일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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