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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도 사랑은 남는다 2

놓아주는 사랑, 머무는 마음

by 담서제미

별을 떠나기로 한 그 아침, 그는 천천히 짐을 정리했다. 물병 하나를 챙기고, 장미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잘 살아. 행복해야 돼."


그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장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도 어린 왕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너를 사랑했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미는 힘들게 그 말을 꺼냈다. 결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제야 그는 알았다.

모든 침묵은 사랑이었고, 모든 투정은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을.


가장 깊은 사랑은 침묵 속에 전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사막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이별을 지켜봤다.


어떤 이별은 눈물보다 진한 다짐으로 이루어진다. 함께 있지 못해도 서로의 마음 안에 둥지를 틀기로 깊이 다짐하는.


어린 왕자는 장미에게 다가가 유리 덮개를 조심스럽게 씌웠다. 그 손끝에는 미처 떨치지 못한 미련이 단단한 덩어리처럼 남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자신이 더 자라기 위해서.

장미도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


"할머니"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짜 사랑은 놓아주어도 남아 있는 거야."


나는 조용히 숨을 내 쉬었다.


"그래, 사랑은 붙들어야만 존재하는 건 아니야."


놓아줄 수 있어야, 비로소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었다.


사랑은 붙잡고 매달리는 손이 아니라 믿고 기다려주는 마음이었다.


그는 별을 떠나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외로웠지만 슬퍼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나는 늘 '함께 있어야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함께 있지 않아도, 서로를 잊지 않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사랑은 결국 상대를 놓아주는 연습이었다. 기대 없이 바라보고 조건 없이 축복하고 떠난 후에도 그가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것.


사랑이 깊어질수록 소유하려는 욕망은 사라지고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그 애는 내 별 위에 있을 거야. 내가 어디를 가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애가 웃는 별을 찾을 수 있어."


그 말은 가장 다정한 염원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언젠가는 너도 장미를 잊을 수 있을까?"


그는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진짜 사랑은 영원히 잊히지 않아. 그냥,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빛나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푸른 하늘 위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 그곳 어딘가에 장미를 품은 별 하나가 오늘도 조용히 숨을 쉬고 있으리라.


그곳을 떠난 어린 왕자는 여전히 그의 사랑을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사랑은, 떠나는 순간에도 남아 있었다. 더 이상 함께하지 않아도 서로의 하늘을 지켜주고 있는 별이었다. 서툴러도, 늦어도 한 번 피어난 마음은 쉽게 지지 않는다는 것을.


진짜 사랑은 떠난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모양을 바꿀 뿐이었다.


오늘 밤 나는 조용히 창문을 연다. 별이 흐르는 하늘 아래, 어디선가 웃고 있을 그 마음을 생각하며 가만히 속삭인다.


"잘 있어. 행복해야 돼."


그 말은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남긴 말이기도 했다.


예순.

나는 사랑을 더 이상 붙들려하지 않는다. 대신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붙들고 있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놓아주는 손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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