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고 친구들과 먹던 떡볶이가 그립다.
JTBC의 수목 드라마, <서른, 아홉>.
공교롭게도 내가 브런치에서 서른아홉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이 드라마도 함께 방송되었다. 일부러 따라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서른아홉을 기록하기 위해 브런치 연재 글을 쓰고 있었던 찰나에 이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TV가 없는 우리 집에서는 드라마를 보려면 Netflix를 시청해야 한다. 그러나 한 동안 아이들이 디즈니 플러스를 보고 싶다고 하여 Nexflix를 구독하지 않다가 3월부터 다시 Netflix로 갈아탔다. 그렇게 뒤늦게 보기 시작한 드라마, <서른, 아홉>.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 손예진이 마흔을 앞둔 차미조라는 의사로 나오고 두 친구로 전미도(정찬영 역)와 김지현(장주희 역)이 나온다. 미혼인 여자 셋의 우정을 그린 드라마로, 극 중 한 명의 친구가 시한부로 나오면서 남은 기간을 보내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처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와, 같은 서른아홉인데 어쩜 똑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네?"라며 보았다. 일단 차미조는 결혼을 하지 않은 의사이다. 일단 '의사'라는 타이틀부터 넘사벽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부러웠던 적도 없다. 나는 주사 바늘이 내 몸에 들어가는 것조차 못 보는 사람이다. 일단 직업 자체가 공감이 되지 않을뿐더러 외모와 성격도 비현실적이다. 물론 손예진이니까, 당연하다. 서른아홉인 현실세계에 사는 나는 가장 자주 입는 옷이 홈웨어인데, 같은 서른아홉 차미조는 드라마에서는 하나같이 스타일리시한 옷을 입고 명품백을 매고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걷는다. 늘 머리는 미용실을 간 마냥 손질되어 있고 말이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언제였지... 아마 20대 초중반, 회사를 다녔던 시절 그즈음이 마지막인 것 같다.
물론 세상은 공평한지라, 차미조 또한 완벽한 인간은 아닌가 보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버려져 고아원에 있었고 좋은 양부모를 만나 바르고 예쁘게 잘 자랐다. 마흔을 앞둔 서른아홉에 처음으로 엄마를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오랜만이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오열하던 차미조이다. 나도 우리 엄마에게 "오랜만이다"라는 인사를 듣지만 차미조와는 사뭇 다른 오랜만이다. 고아원, 이라는 설정 자체도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감이 참 어려운 대목이기는 하나, 워낙 연기가 훌륭해서일까? 손예진이 울면 나도 울었다.
유일하게 <서른, 아홉> 드라마에서 내가 공감 가는 부분은 차미조와 두 친구, 정찬영과 장주희의 우정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 때부터 친구인 이들은 떡볶이와 콜라를 즐겨 먹었다. 서른아홉이 되어서도 똑같이 셋이 떠들면서 떡볶이를 먹는다. 다만 콜라가 소주로만 바뀌었다. 이 대목에서 격하게 공감되었다. 여고생이라면 단골집 떡볶이집 하나는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은마상가 떡볶이를 그렇게 다녔다. 그 동네 아이들을 거기서 다 만났을 정도였다. 그때 교복 입고 먹던 떡볶이집. 지금은 그 떡볶이집에 같이 가서 먹진 못하지만 나도 친구들과 떡볶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학창 시절 떡볶이와 콜라 또는 사이다를 먹었던 우리는 어느새 맥주, 소주를 마시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마흔을 앞둔 우리의 대화를 들어보면 고등학교 때 수다 떨던 그때 모습 그대로이다. 왜, 약간의 여고생 은어도 섞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늘 서로의 흑역사를 안주 삼는다.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해도 재미있고 지겹지도 않은 그때 그 시절 이야기. 나도 세 명의 고등학교 동창과 친하다. 나와 A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A는 워킹맘이다. 반면 B는 미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대화가 통한다. 이유인즉슨, B라는 친구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워서 그들을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만나면 서로 자식 고민하기 바쁜데, 전혀 어색하지 않게 대화가 흘러간다. 드라마에서의 세 명의 우정과는 다른 점은 일단 아직까지 우리 셋은 매우 건강하다. 그리고 아이 엄마인 사람이 둘이나 있기에 우리는 모두가 잠자는 시간에 자주 만난다. 아무 때나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 7시에 맥모닝을 같이 먹거나 일찍 문을 연 해장국집을 간다. 또는 밤 9시에 아이들을 다 재우고 밤마실을 나간다. (이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못 만났다.) 그리고 결혼을 하라고 절대 권유하지 않으며, 오히려 미혼인 B의 삶을 부러워하는 아주미들이다.
대학을 다닐 때는 서로 소개팅도 시켜 주었고 회사를 다니면서는 함께 휴가를 내서 홍콩에 여행을 가기도 했다. 늘 생일이면 케이크를 사서 선물과 함께 축하를 했었고, 누군가 이별을 하면 하던 일 모두 제치고 술 사주러 나왔던 우리 사이이다. 결혼을 한 후 아이들이 생기니 서로의 집에서 보게 되었고 가끔은 아이들과 함께 만나기도 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한번 남편들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춘천에 닭갈비를 먹으러 1박을 하고 오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함께 늙어갔다. 지금도 가끔 교복 입었던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뜬금없이 카톡에 공유하면서 깔깔깔 웃기도 한다.
<서른, 아홉> 드라마 자체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통해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올라서 좋았다.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중년의 우정'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처럼 서른아홉인 사람들의 삶, 우정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고 흘러가는 대로 살기에는 서른아홉은 너무 젊잖아.
드라마 <서른, 아홉>에 나온 대사다. 맞다,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는 이제 막 인생 2막 출발선에 선 나이이다. 두 번째 스무 살을 앞둔 나이이기도 하다. 자기 가정을 꾸미느라, 그리고 내 커리어를 쌓느라 바빴던 30대를 흘려보내고 이제 서른아홉인 우리는 조금은 인생의 '여유'를 누려도 되는 나이가 아닐까? 우리도 돌이켜보면 예전에 비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A라는 친구도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아마 말은 하지 않아도 나와 느끼는 포인트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제는 마음 편히 떡볶이를 먹으면서 신나게 수다 떨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로 돌아가서 철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건강한)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