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처음으로 무인 빨래방을 열었고 1년 반 정도가 지나면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처음 오픈할 때에는 "2호점, 3호점도 내야지! 배운 것이 아깝잖아!"라고 말했던 남편. 그러나 나는 처음 사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남편의 말에 동조할 수 없었다. 그러나 1년 반 지나고 나니 '흠, 또 하려면 할 수 있겠는걸?'이라는 자신감이 손톱만큼 생긴 것 같다. 그렇게 생긴 자신감과는 달리, 남편은 늘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게끔 한다.
내가 알던 고시원은 경제적으로 조금 불안정한 사람들이 전월세를 살 보증금이 없어서 고시원에 들어가서 산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고시원을 가본 적은 없었고 드라마 등에서 본 것이 다 였다. 하루 종일 막노동을 하다가 술에 취해 밤늦게 고시원에 들어가서 잠만 자는... 그러나 남편이 보내준 고시원 사이트들을 보니 고급 오피스텔 같기도 하고 어떤 곳은 호텔급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내 시야가 정말 좁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고시원을 하고 싶다고 남편이 말할 때 즈음, 사실 스터디 카페도 몇 군데 알아보았다. 나는 남편에게 스터디 카페를 한다면 나도 열심히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사심 가득 담은 대답이었다. 스터디 카페를 지키면서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서, 나중에는 아이들과 같이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강력하게 스터디 카페를 하자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고시원이 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고시원 물건을 찾아다니느라 한동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다녔다. 결국 그렇게 남편은 마음에 드는 고시원을 하나 찾아내어 인수하였다.
내가 빨래방을 오픈했을 때 주변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말을 안 해서 빨래방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지인들은 적잖게 놀랐다. 나의 본업과 전혀 다른 사업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 나조차도 빨래방을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빨래방을 열었으니, 나도 놀랍기만 했다. 그런데 2호점 빨래방도 아니고 고시원이라니... 내가 겪어본 바로는 빨래방은 고시원에 비하면 정말 애교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급이 다르다.
조금 다행인 것은 고시원이 대학교 앞에 위치한 덕에 대부분이 대학생들이 이용한다. 그래서 내가 드라마에서만 보던 분들이 이용하는 곳은 아니다.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렇다고 핑크빛 인생만이 펼쳐져 있지는 않다.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다 보니 요리를 해 먹기보다는 많이들 시켜 먹는데 조금은 개념 없는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20대 초반, 무슨 집안일을 해 보았겠느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가르쳐주면, 길들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사실 인스타 보고 사진 잘 나오는 곳, 즉 인스타 맛집 등을 찾아다닌다. 비싼 돈을 주고라도 더 감각적인 것을 찾는다. 그래서 일단 우리 고시원도 방의 인테리어도 간접 조명으로 다 바꾸고 자잘한 소품을 요즘 친구들 취향으로 바꾸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방도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탈바꿈 중이다. 그렇게 조금 신경만 썼을 뿐인데, 공실없이 대기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처음 고시원을 인수받고 간 날은 멘붕이었다. 청소를 며칠 못해서 그런지 분리수거장에는 먹다 남은 치킨과 피자 등이 나뒹굴고 있었고 부엌에는 먹다 남긴 밥이 그대로 있는 밥솥이 싱크대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날 우아하게 원피스를 입고 처음 고시원을 방문했는데, 바로 분홍 장갑을 끼고 분리수거를 하고 설거지를 한 신세가 되었다. 아이들은 1층에 있는 메가 커피에 앉혀 두고 청소를 한 지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빨래방을 열 때에도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고시원 청소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남이 먹은 것들 치우려고 고시원을 했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더니 '점심 맛있는 거 사줄게. 좀만 힘내'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러나 조금씩 안정을 찾으면서 하나하나 배우며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되고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빨래방과는 스케일이 다른 고시원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2호점 고시원도 하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나 말고 남편이 ㅋㅋㅋ) 빨래방은 잠시 와서 빨래만 하고 가는 손님들을 상대하면 되지만 고시원은 숙식을 3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니 그 책임은 몇 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남편의 지론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아직은 어리버리 고시원 운영자이지만 빨래방도 1년이 지난 지금 익숙해진 것처럼, 고시원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서른아홉에 생각지도 못한 고시원을 처음 운영해 본 것처럼 과연 마흔의 나는 또 어떤 새로운 일을 하고 있을까?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