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주일에 두 번, 나에게 맞지 않는 구두를 신는다. 그 구두를 신고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학원으로 향한다. 또각또각. 수업 첫날, 긴장한 나는 강의실 문을 열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대략 4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강의실에 뒷 쪽에만 학생들이 몇 명 앉아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맨 앞자리에 앉았다.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하나 둘 학생들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제일 늦게 온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강의는 시작되었다.
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대학원 시절이 떠올랐다. 벌써 10년이 조금 더 된 일이다. 2년 동안 힘들게 다녔던 통역 대학원. 그때는 신혼 초기였고 첫 아이를 출산한 직후였다. 무슨 정신으로 학교를 다녔나 모르겠다. 촘촘한 수업 시간표 사이에 학교 내 카페에서 김밥과 커피를 먹으며 끼니를 때우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가끔 동기들이랑 저녁 먹고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집에 들어간 날,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새벽 7시부터 스터디를 하던 날들. 시험 기간이면 어김없이 교수님의 피드백에 멘탈 털리던 그때 그 시절이 불현듯 생각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학교 시절 친구들이랑 떠들며 강의를 듣던 추억, 맨 뒷자리에 앉아서 잠을 자던 그때 그 시절도 떠올랐다. 그러한 대형 강의도 들었지만 반대로 10명 남짓 학생과 함께 동그랗게 앉아서 서로 얼굴을 보며 교수님과 토론하는 수업도 생각났다. 그리고 남자 친구 대학교에 가서 몰래 영어 강의를 들었던, 풋풋했던 시절까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대학원까지 참 오랫동안 나는 강의실에서 공부를 해 왔다. 그런데도 뭐가 부족한지, 서른아홉에 다시 10년 만에 강의실이라는 곳에 앉아 있는 나란 사람.
"그렇게 공부하라고 할 때는 안 하더니..."
"얘들은 어쩌고 뭘 또 그렇게 배우러 다니니."
내가 학원을 다닌다고 했더니 우리 엄마가 한 말이다. 맞다. 어쩌면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에게는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점심만 먹고 오는지, 1시도 전에 집에 온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서 딱히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으며 다녀봤자 미술, 음악, 운동 정도이다. 아직도 혼자 학원을 가지 못하는 둘째는 내 손이 아직 필요한 나이인가 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이 강의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먼저 아이가 매일 늦게 집에 올 수 있도록 방과 후 시간표를 짜야했고 거기에 맞춰 학원들도 시간을 조정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알뜰폰을 둘째 아이에게 사주었다. 왔다 갔다 하면서 나랑 연락이라도 돼야 내 마음도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학원에 가서 배우는 목적, 목표,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과감 없이 공유했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엄마의 꿈을 응원해주었고 본인들이 조금은 불편하고 두렵더라도 엄마의 스케줄에 기꺼이 맞춰 주었다. 아직 방과 후도 시작되지 않아서 당분간은 남편이 재택근무를 해 주고 있다. 이렇게 엄마인 나는,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면 가족 모두의 배려 없이는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가족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억울한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배움에도 때가 있는 법. 그래서 나는 더 늦기 전에, 마흔이 되기 전인 서른아홉에 예전부터 꿈꿔온 그림책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다고 2년 공부한 후, 딱히 중개사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가끔 남편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림책을 내겠다고 값비싼 수강료를 내며 학원을 주 2회 다닌다고 하니 (티는 안 냈지만)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더 늦어지면 다시는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니면 즐기며 배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진정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즐겁게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오랜만에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공부할 때는 느끼지 못한 희열이다. 이러한 나의 삶의 충족 외에도 지금 내가 공부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이렇게 엄마도 즐겁게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너희가 공부하는 것이 '경쟁'이 아니라 배움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과정을 즐기면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이내 강의에 집중을 하고 나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혼자 급한 마음을 안고 짐을 챙긴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 훌쩍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주위에 앉은 학생들은 느긋해 보인다. 밥을 같이 먹자는 이야기도 저 멀리서 들려온다. 나도 그 무리에 껴서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분들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인다. 적어도 아이들이 중고등학생 이상은 되었을 것 같다. 50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림책을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배우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더 열심히 즐기며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그분들의 점심 메뉴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나는 오늘도 또다시 집으로 달려가는 애델레라로 변신한다. 3시간의 수업 시간 동안, 평소에 잘 안 신는 구두를 신고 낯선 드레스를 입으며 달콤한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이 있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애델레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