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제일 처음에 한 일이 바로 '아르바이트'였다. 친한 친구와 같이 삼성역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면접을 봤다. 그 당시 친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고 나는 첫 경험인 셈이었다. 간단한 면접을 본 후 단정한 유니폼을 받은 나와 친구는 함께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하루 만에 무너졌다. 당시 그 레스토랑은 번화가 초입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정말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4-5시쯤 가서 마감까지 하고 왔다. 거의 6시간을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홀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이 먹고 놔둔 접시들을 쟁반에 열심히 쌓아 올리며 일을 했다. 집에 오면 발을 자르고 싶을 정도로 너무 아팠다. 그렇게 3일을 일을 하고 난 후 결국 나와 친구는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철없는 여대생이었다. 남의 돈은 쉽게 벌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곱게 자란 여대생 두 명은 세상 쓴 맛을 알 턱이 없었다.
우리는 그만두겠다고 매니저님께 말씀을 드렸다. 우리는 갓 대학에 입학한 20대 여대생이었고 그 매니저란 분은 내 기억에 그래 봤자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매니저였다면 3일만 일하고 줄행랑치는 여대생 둘을 보고 '에이, 똥 밟았네'하고 그냥 보내고 말 것 같은데, 매니저는 우리 둘을 불러 앉혀 놓고 이렇게 말했다.
너네가 일한 이곳은 힘든 일도 아니야. 너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세상은 더 힘든 일이 많아. 잘 명심하고 가라.
그 당시에는 매니저의 말이 전혀 와닿지도 않았다. 나는 그 후 집 바로 앞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1년 넘게 일을 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뷔페 레스토랑보다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는 한가했다. 그 후에도 나는 커피숍, 과외, 기업 인턴 등 여러 경제활동을 했지만 가끔 첫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매너지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매니저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서 이야기해주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매니저의 말을 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매니저의 말이 가끔 생각이 난다.
늘 나는 고용인의 입장으로만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빨래방을 운영하면서 나도 고용주의 입장을 처음 겪었다. 빨래방이 집과 멀다는 이유로 가능하면 간단한 청소는 아르바이트를 써서 해결하려고 했기에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게 되었다. 동네 맘 카페, 당근 마켓, 그리고 옆 가게 사장님 소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실 분을 구했고 오픈한 후 1년 반 동안 4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우리 가게를 거쳐갔다. 고용인으로만 거의 39년 살다가 처음으로 고용주가 되어 고용인을 구할 때, 참으로 어설펐다. 그리고 고용주로서 내가 무엇을 해 줘야 할지도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하나 둘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대학 동창이 고깃집을 하는데 맨날 전화할 때마다 '고기 집은 잘 되니?'라고 물으면 '사람 쓰는 것 때문에 제일 힘들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정말 그렇다. 특히나 빨래방은 무인이다 보니까 청소해 주는 아르바이트생과의 관계가 전부다. 면접을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대학생부터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면접을 보고 있노라면 첫 아르바이트에서 만났던 그 매니저가 가끔 생각난다. 그때 그 매니저는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대했을까.
지금까지 안타깝게도 조금 익숙해지면 여러 이유로 그만둔다고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곳으로 취업이 되었다, 몸이 좋지 않다, 부모님 간병을 해야 한다 등 이유도 다양하다. 그 이유가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아르바이트생의 의견을 그냥 받아들이고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잘 지내시길 바랄 뿐이다. 붙잡는다고 다시 마음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만약 어떠한 불만이 있었더라면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소통을 잘 해오려고 다분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어떤 부족함은 없는지, 불편한 사항은 없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자주 물어보았고 오래 일하시길 바라는 마음에 명절 때마다 선물도 챙겼고 중간에 커피 쿠폰도 보내드렸다. 기업의 첫 번째 고객은 내부고객인 바로 사원이라고 한다. 내부고객이 만족해야 외부고객인 손님도 만족하며 우리 빨래방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 아르바이트생을 대했는데, 짧게 일하다가 금방 그만둘 때는 힘이 빠지긴 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레스토랑의 매니저도 우리에게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말해도 어차피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지금껏 감사했다는 말과 앞으로 하시는 일 잘되시길 바란다고 전한다. 사실 이번 달도 새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일하는 분이 그만둔다는 말을 들으면 며칠 우울하다. 왜냐하면 공들여 교육도 시켜놓고 마음도 줬으니, 나도 사람인지라 서운함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지는 탓인지, 다행히 그 강도도 약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사람 구하는 일이 제일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첫 번째 스무 살 때, 처음으로 고용인 입장에 섰던 철없는 여대생이 두 번째 스무 살을 앞두고 고용인을 고용하는 고용주 노릇을 하고 있다. 아직은 대단한 사업체의 고용주도 아니고 존경을 살만한 고용주도 아니다. 하지만 첫 번째 스무 살 때 만났던 첫 고용주였던 매니저의 마음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고용인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고용주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