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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Sep 05. 2022

내 생일파티 꼭 해주세요!

마흔을 앞두고도 생일 파티가 기다려지는 이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누구누구의~ 생일 축하합니다~"


 살면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 바로 생일 축하 노래.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 이 노래는 불러줄 때도 기분이 좋고, 또 나를 위해 불러준 이 노래를 들을 때도 기분이 좋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이 노래만큼은 변치 않을 것 같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다 아는 국민 노래이다.


 우리 가족은 나 빼고 생일이 모두 9월생이다. 9월 초에 딸, 그리고 9월 말에 이틀 간격으로 남편과 아들 생일이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9월에 추석이라도 끼어 있으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더 무거워진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1년이 9월 기준으로 돌아간다. 해가 바뀌면서 나의 생일까지 몇 달이 남았으며, 그리고 100일 정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아직은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부럽다. 나는 생일이 다가오면 기쁨보다는 한 살 더 먹었다는 살짝 우울함도 함께 오는데 말이다.


 3명이 모두 9월에 태어난 덕분에 9월에는 미역국을 실컷 먹는 달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남편과 아들 생일이 이틀 간격이므로 그때에는 같이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 초를 함께 분다.  

 시댁은 원래 생일 파티를 안 하는 문화이다. 남편 말로는 어렸을 때도 생일 파티는 따로 안 하고 미역국만 엄마가 끓여 주셨다고 한다. 반면 친정은 모든 사람의 생일을 다 챙기는 문화이다. 그래서 시댁 식구들이랑은 생일 파티를 한 적이 없고 시부모님 생신 때만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하는 정도로 끝낸다. 반면 친정은 부모님부터 손주들까지 생일이 있는 그 주에 같이 모여 식사도 하고 케이크도 불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신혼 때는 며느리 생일을 몇 번 챙겨주시더니 이제는 별말씀이 없으시다. 주변에 보면 시부모님께서 용돈도 주시고 맛있는 밥도 사주신다던데 나는 아무 축하를 받지 못해서 초반에는 서운했다. 그러나 자기 아들, 그리고 손주들도 똑같이 생일을 챙기시지 않고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그려려니, 한다.


 그리고 친정 엄마는 사위와 손주 생일이 이틀 차이이고 또 내 딸의 생일과 내 동생 생일이 이틀 차이라, 둘씩 생일 파티를  같이 해서 "넌 이런 걸로 효도하네"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신다. 그나마 날짜 차이가 안 나니까 생일을 함께 할 수 있어,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신 친정 엄마 입장에서는 조금 편하신가 보다.  


 이러한 시댁 생일 파티 문화를 친정 식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갑자기 친정 아빠가


야, 그럼 우리도 이제 다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장난 삼아 하신 말씀인 것 안다. 친정에서는 딸, 사위, 손주 모두 생일을 챙기며 친정엄마가 요리 솜씨를 발휘하시며 해당 계절에 맞는 제철 음식으로 우리의 생일상을 채워 주신다. 언제까지 이렇게 엄마의 맛있는 생일상을 먹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내가 나이 들수록 우리 엄마도 늙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안돼~ 여기서도 축하 못 받으면 난 어디서 축하받아~


나는 나이 마흔을 앞둔 첫째 딸임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말에 바로 되받아쳤다. 갑자기 친정 식구들이랑 생일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대학생 때는 꼬박꼬박 친구들이랑 생일 파티를 매년 했고 남자 친구가 있었다면 그날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친구들과 하루 종일 맛난 음식 먹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받고 싶던 선물을 받았기도 했던 날. 그리고 남자 친구에게는 깜짝 선물을 받으며 하루 종일 사랑받은 날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결혼을 하고 생일을 남편이 챙겨주고 또 아이가 생기면서 내 생일 따위 챙기지 못하는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보낸다는 것은 사치였고 남편과 아이들과 생일을 보내게 되었다. 물론 행복했다. 그러나 점점 뭐랄까...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몇 번씩 불던 촛불도 가족끼리 한 번 불고 끝이 나면서, 내 인생의 불길도 점점 꺼져가는 촛불처럼 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아이들이 크면서 생일을 친구들과도 다시 보내게 되었다. 물론 대학생 때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친구들끼리는 생일을 다시 챙겨 주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카카오톡에 생일이 뜨기도 해서 연락을 잘 안 하던 친구에게도 생일 알림이 뜨면 겸사겸사 서로 연락하게 되고 축하 선물로 기프티콘을 서로 주고받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 생일에 친구들이랑 생일 파티를 하기도 하고 친구가 케이크를 사 와 우리 집까지 와주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아이들도 커서 남편과 함께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기도 한다.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생일파티까지 안 한다면 왠지 난 더 서글플 것 같다. 물론 점점 많아지는 초를 불 때 씁쓸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이 먹는 것을 친구들 또는 가족들이 함께 축하해주고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는 일은 참 감사한 일이다. 나는 앞으로 더 친구들의 생일을 챙겨 주고 싶다. 그리고 함께 나이를 먹는 남편의 생일도 더 알뜰살뜰하게 챙겨줘야겠다. 그리고 내 생일도 친정 부모님이 건강하신 한 함께 보내자고 졸라야겠다. 나이 들수록 그리고 내 아이를 키울수록 부모에 대한 마음도 커진다. 물론 생일은 내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도 나이 먹을수록 커지는 것 같다. 다음 내 생일은 진짜 마흔을 맞이한 나의 생일이기에 더 부모님께 감사하고 가족에게 축하받는 생일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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