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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Apr 17. 2023

3. 계약하러 갈 땐 꽃을 사 가세요.

그림책 작가되기 프로젝트

 살면서 계약서를 마주하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내가 기억하는 첫 계약은 아마 취업을 하면서였다. 근로계약서. 그리고 해마다 연봉을 협상한 후 다시 계약서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다음, 아마 생애 가장 비싼 물건이라 불리는 부동산 계약서를 마주했다. 신혼집 알아볼 때 전세 계약서를 남편과 함께 하러 갔던 것이 내 생애 가장 고가의 쇼핑이었다. 그 후 내 집마련을 했을 때 부동산계약서에 사인을 했는데 얼마나 손이 떨렸던가? 수중에 만져본 적도 없는 억 단위의 집의 계약을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통역사로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서 매년 근로계약서, 또는 비밀유지계약서를 맺는다.


 나름 수많은 계약서와 마주해 왔다고 자신했으나 출판사와의 계약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아마 내가 그토록 꿈꾸던 그 순간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먼저 계약서 가안을 이메일로 먼저 보내준다. 출판 업계는 처음인지라,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계약서의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다시 읽고 또 읽다 보면 여느 계약서와 비슷한 흐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인지가 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숫자가 들어간 곳이다. 인세 몇 %, 계약 기간 몇 개월 등. 그 부분만 자세히 체크를 하고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렇게 전자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 되는데, 출판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온다.


 나는 출판사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나 계약을 엎어버리면 어떡하지?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지?라고 말이다. 사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작업을 진행 중인 지금도 출판사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을 친다.


 작가님~ 한번 뵈었으면 하는데요, 언제 시간 되세요?


 나는 출판사 가는 길에 그동안 나에게 아낌없이 조언해 주신 에디터님과 팀장님께 드릴 꽃을 사기 위해 단골 꽃집에 들렀다. 사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그리고 꽃을 줄 때 내가 더 기쁘다. 그리고 여성분들은 거의 꽃을 받으면 좋아하신다. 감사의 마음을 예쁘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나는 꽃이라 생각해해서 2송이를 사면서, 혹시 한 분 더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1송이를 더 사서 3송이를 사서 월드컵경기장으로 달렸다.


 처음 만난 후 2번째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동안 원고를 3-4개월 주고받고 통화도 여러 번 해서 그런지,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가웠다. 그리고 꽃을 내밀자, 에디터님과 편집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너무 좋아라 하셨다.

오늘은 디자인 팀장님도 인사를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디자인 팀장님이랑 그림작업으로 자주 소통하실 거예요~

 마음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외쳤다. 꽃 1송이를 더 산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그렇게 디자인 팀장님이 들어오셨다. 지금까지 나와 소통했던 편집팀 2분과는 다른 포스의 팀장님이었다. 키가 크시고 마르셨고 얼굴에는 '카리스마'라고 적혀있는 듯한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괜히 디자인 팀장님이라 그런지 옷도 세련되었고 화장도 화려해서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나는 바짝 긴장을 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한 후 나는 꽃 1송이를 팀장님께도 드렸다. 그랬더니...


어머~ 나 꽃 진짜 좋아해요~ 매주 요 앞 꽃가게에 월요일마다 꽃 사 오거든요~ 너무 고마워요~

 홈런을 친 순간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딱딱했던 팀장님의 표정이 사랑에 빠진 한 소녀의 표정으로 바뀌면서 꽃 한번 보고 내 얼굴 한번 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역시나 미대 출신답게 (나에겐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미대생인 사람과 미대생이 아닌 사람) 나의 그림에 전문적인 크리틱을 주셨고 나에겐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양재 꽃시장 근처에 산다고 했더니 너무 부럽다며, 다음에 꽃구경 할 수 있는 곳에서 미팅을 하자며 소녀 같은 팀장님과의 미팅은 무사히 마쳤다.


 사실 꽃시장 근처의 꽃집에서 꽃을 사면 그렇게 비싸지 않다. 그래서 나는 종종 누군가를 만날 때 꽃을 사서 간다. 적은 금액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에 '미소'라는 씨앗을 심어줄 줄 수 있기 때문에 꽃 선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도 나의 꽃 선물로 디자인 팀장님의 얼굴이 미소로 번졌고 아마도 며칠은 책상 위에 꽃이 그녀의 마음을 향기롭게 해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좋은 시작을 끊어서인지, 팀장님은 늘 나를 따뜻하게 마주해 주시고 아낌없이 조언을 해 주신다.


어차피 모든 것은 결국 '사람 대 사람'이 이루어내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AI시대라 챗 GPT와 대화를 하는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내야 할 것들이 많은 세상이다. 내가 무인 빨래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결국 손님을 다시 오게 만드는 것은 사장이라는 '사람'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를 하고 매장에 애정을 갖고 운영하는지, 손님들은 다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계약을 갑과 을, 이라는 단어로 계약을 맺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사람에 더 집중하고 싶다.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만난 순간에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작은 시작이 어쩌면 나에게 큰 행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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