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되기 프로젝트
출판 업계는 말이야~ 사람들이 다 좋아.
따뜻한 곳이야.
나는 수업 시간에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뭐야, 그런 게 어딨어. 먹고살기 힘들어서 경쟁이 치열할 텐데...'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각자 몸담고 있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나는 통역에 몸을 담고 있고 부동산에 살짝 발을 담그고 있고 손은 그림 그리는 일에 담그고 있다. 분야마다 풍기는 느낌이 있긴 하다. 그리고 업계마다 사람들의 특징 또한 있다. 그러고 보니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을 하더라.
그림 그리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어요.
다 순수해요.
나는 사실 이 말도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어머니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 같다.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비슷한 경험들이 떠오른다. 들여다보니 나는 일반화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보다. 사람은 다 다른데, 똑같은 사람이 없는데 왜 하나로 통일시켜 일반화를 시키는가? 아마 그것에 반감을 가졌었던 것 같다.
그러다 작가 지망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출판업계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스승님이 다르고 닳도록 말씀하신 그 따뜻한 출판업계 말이다. 아직 완전한 작가가 된 것은 아니기에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처음 문을 두드리고 첫발을 내딘, 그곳의 온도를 기록하고자 한다.
투고를 열심히 돌리다가 처음으로 회신을 받은 출판사가 있다. 그 출판사의 대표님이 직접 메일을 회신해 주셨다.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그러나 지금 조금 바빠서
1달 후 정도에 다시 연락을 주세요.
나는 너무나 기뻤다. 왜냐하면 그 출판사의 책을 몇 개 읽었었데, 좋은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회신을 드렸다. 그러던 와중에 (지금 계약을 한) 출판사에서도 메일이 왔다.
미팅을 바로 하고 싶습니다! 언제가 좋으세요 작가님?
몇 분을 망설였다. 사실 망설였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다. 내가 망설일 처지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생각했다. 첫 번째 출판사를 만난 것도 아닌데, 그리고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두 번째 출판사를 안 만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두 번째 출판사와 미팅을 가졌다.
첫 미팅 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덧 첫 번째 출판사랑 약속한 1달 정도가 다 되었다. 나는 연락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때 나의 심정은,
출판사에서 정말 내 원고가 탐났으면 먼저 연락을 주지 않았을까? 연락이 없는데 먼저 내가 해야 할까? 잊힌 것은 아닐까? 내가 먼저 연락하면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그랬다, 나는 철저히 '을'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신인 작가, 아니지 듣보잡 지망생이 출판사 대표님께 만나자고 한다고? 나는... 그땐 그랬다. 의기소침했었다. 왜냐하면 이 두 곳 외의 출판사에서는 줄줄이 거절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기에, 내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출판사를 잊기로 하고, 두 번째 출판사에 온 힘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작가님, 한번 뵙기로 했는데 언제 시간 되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가슴이 뛰었다. 마치 남자친구 몰래 다른 남자와 소개팅을 하고 온 것을 걸린 것 마냥.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중하게 회신을 드렸다. 기다리던 중 다른 출판사와 미팅을 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원고가 나오면 그때 연락을 드리겠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대표님은 너무 아쉽다며, 알겠다고 인사를 마쳤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작가님, 새 원고가 나오기 전이라도 한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일단 대표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까지 나를 보려고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대표님과 약속 시간을 잡고, 우리 집에서 1시간 반 정도 거리의 출판단지로 향했다.
출판단지는 말만 들어봤지 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정부의 지원 하에 만든 출판단지였으나, 여러 이유로 활성화가 많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령도시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없던 휑하기만 했다. 작가 입장에서는 괜히 마음이 아팠다. 출판업계가 활성화되어 출판단지도 북쩍북쩍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작은 사무실에서 대표님을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조금 연세가 있으신 대표님은 멋쟁이셨다. 나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면서 나의 안부를 물으셨다. 나는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대표님이 기다려달라고 하신 동안 다른 곳에서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만났고 지금 계약 전이지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먼저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감히 신인작가가 대표님께 먼저 연락을 드릴 용기가 안 났다, 그냥 하신 말씀인 줄 알았다 등등. 구차한 변명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대표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시더니,
아, 내가 진작에 연락을 할걸 그랬네요. 제 불찰이죠.
그 말을 들으니 더 죄송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새 원고를 가져왔냐고 물으셨다. 응?? 나 지금 하고 있는 것, 하나 하는 것도 벅찬데 새 원고?
아니요, 저 아직 못썼습니다...
어머, 원고도 안 가지고 오는 작가는 처음이에요, 호호호호
... 그랬다, 나는 너무 초자였다보다. 출판사 대표를 만나러 갈 때는 뭐라도 만들어서 들이 미뤄야 정상인데 말이다. 나는 무슨 배짱으로 빈손으로 갔을까,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다만 기획만 해둔 아이디어는 있어서 그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표님은 거기에 대해 아낌없이 조언도 주셨다. 그리고 현재 다른 출판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원고에 대해서도 본인의 생각, 즉 나의 원고가 이렇게 풀었으면 좋겠다는 대표님의 생각도 나누어 주셨다. 그 외에도 출판의 전반적인 이야기, 현재 대표님 출판사의 작가님들 이야기 등 나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값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표님은 마지막에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음에 대해 쓴 작가님의 원고가 궁금했어요.
마음에 대한 이야기, 잘 풀어주세요.
너무나 감사했다. 듣보잡 신인 작가 지망생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고, 나를 응원해 주시고,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시는 대표님. 2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눈 후 집에 돌아오는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스승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출판 업계는 따뜻해~
내가 출판 업계를 다 경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오늘 경험한 출판 업계는 너무나 따뜻했고 편안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아니꼽게 들은 나를 반성했다.
그 후 출판사와 정신 계약을 한 후, 나는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다. 왜냐하면 대표님이 그쪽이랑 진행이 안되면 자기에게 오라고 말씀을 주셨기에, 혹시나 기다리실 까봐 연락을 드렸다. 너무 축하드린다고 좋은 책 기다리고 있겠다고 회신을 주셨다. 대표님이 주신 따뜻한 조언을 가슴에 되새기며, 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그려내야겠다.
나는 따뜻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 재미있고 철학적이고 뭐 그런 책도 하고싶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진 따뜻함을 나눠주고, 그리고 세상은 참 따뜻한 곳이라는 곳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어쩌면 출판 업계도 내가 바라는 따뜻한 온도를 가진 곳이 아닐까? 이 따뜻한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조금 희망을 가져본다.
그래서 교훈!
의심이 많은 사람은 부딪혀 보자!
내 말이 맞는지, 네 말이 맞는지:)
*참고로 아직 작가도 아닌 신입 작가 지망생이 극히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실제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다르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