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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ul 03. 2023

4. “작가님, 잘 그리고 계시죠?”

그림책 작가되기 프로젝트

 그림이 그릴 시간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 나는 그림을 외면하고 있다.


 10월까지 모든 작업을 마치기로 되어 있는 나의 그림책 작업. 계약할 때만 해도 10월은 아주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조금씩 실감하며, 내 마음에 점점 더 불안이라는 돌덩어리가 커지고 있었다. 하필, 한가하던 나의 본업마저 이렇게 바쁘단 말인가. 하루에 2-3건의 통역을 쳐내면서(?), 그 와중에 그림책 하브루타 수업, 그림책 수업, 그리고 부동산 독서모임. 심지어 그림책학교의 심화반 수업을 들으며 자격증 준비까지 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미술학원 전시도 얼마 남지 않아, 내 작품도 끝을 내야 한다.



작가님, 잘 그리고 계시죠?


 1달 만에 연락 온 에디터님의 카톡.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는 세상에서 ‘바빠서’라는 핑계를 제일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바빠서 연락드리는 것을 깜빡했다’라고 말을 해버렸다. 프리랜서의 삶을 오래 살다 보니 나를 통제해 주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와의 약속’.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프리랜서의 삶을 살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매일 1시간이라도 운동하기, 매일 15분 크로키 그리기, 매일 그림일기 쓰기, 매일 10페이지라도 독서하기… 그렇게 나와 매일 해야 하는 약속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프리랜서는 그 누구도 나를 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그림책 작업도 가능하면 1달 되는 날, 작업물을 출판사에 보내야 한다는 나와의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 6월에는 어겼다.


 신기하게도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에디터님이 나에게 카톡을 보내온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열일 제쳐두고 내 그림책 작업물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림책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일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한 참 서랍 속에 넣어두고 열어도 보지 않고 잊고 있었다가 다시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글쓰기를 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어디서 들었다. 자신의 글의 퇴고를 할 때, 몇 달 후 다시 읽어보고 하는 작가들도 많다며. 그림책도 비슷한 것 같다.


 그럼에도 막히는 부분은 여전히 막혀있다. 어디 가서 뚫어뻥이라도 사서 뚫고 싶다. 심지어 작업을 하며 가끔 자괴감도 든다. 물론 내가 그림책학교에서 그림책 공부를 하고 있고, 또한 그림책 하브루타 수업을 하며 수많은 그림책을 봤다고 자신했지만,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일치되는 사람은 정말 전문가인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전문가는 아닌 것 같다. 미술 이론을 잘 안다고 다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는 나도 그렇게 비추어질 텐데. 잘 알면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다.


 그림책 작업이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 핑계겠지만 말이다. 더 치열하고 치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나의 삶은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그림’이라는 시간에 공통되어 있지만 말이다. 왜 사람들이 원씽, 원씽하는지 알겠다. 나는 멀티가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휘몰아쳐봤어야 했는데, 그만큼 나의 삶이 느슨했던 것이다. 이제야 깨달았다. 이 정도 휘몰아 쳐줘야 한다는 것을. 이 정도로 코너에 몰려야 한다는 것을.


 다행히 에디터님이 지난달에 보낸 나의 작업물에 대한 피드백을 주시겠다고 하셔서 일단 기다리고 있다. 매일 몸은 집안일하기 위해 움직이고 입밖으로는 일본어를 내뱉고 있지만, 내 머릿속은 늘 그림책 작업으로 빙빙 돌고 또 돌고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그림책은 없다,라고 편집장님의 말씀을 떠올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만족스러운 첫 그림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건 누구나 다 그럴 것이다.


 그림책에 대해 알면 알수록, 좋은 그림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내 그림책 작업과의 괴리감은 어쩔 수 없는 가보다. 눈만 높아진 것이다. 좋은 그림책과 그렇지 않은 그림책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나의 그림책은 어떤가? 바로 그것이 문제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또는 버려질 수도 없다. 내 그림책이 계약되기 몇 달 전, 남편 또한 자기 개발서로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계약금까지 받았다.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던가. 내심 너무 부러웠다. 나의 그림책보다 먼저 자기가 책을 내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그러나 그 후 남편은 글을 쓰지 않고 있고, 심지어 출판사에서 연락도 안 온다. 남편이 글쓰기를 포기한 것일까? 출판사가 남편의 책을 포기한 것일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남편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끝까지 붙들고 해내야 한다.


 정신을 버쩍 들게 한 에디터님의 카톡을 보고 다시 매일매일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다. 하루 10분이라도 말이다. 잠시 느슨해졌던 나의 나사를 조여야겠다. 더 단단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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