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인터넷 사이트 중, '스팀잇(Steemit)'이란 곳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긴 하다. 이용자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그렇지. 암호화폐(이하 '코인') 중 하나인 Steem블록체인을 이용하는 사이트다. 지금 살펴보니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검열 없는 SNS를 추구한다.'라고 되어있다. (흠..) 간단하게 말하면.. 코인 광풍이 불던 몇 년 전, '글을 올리면 암호화폐를 벌 수 있는 사이트'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은 많이 시들해졌지만, 그때는 정말 코인을 안 하면 바보취급받던 때였다. 나도 그런 바보 중에 한 사람이었지만.
코인 광풍이 몰아치기 한 일 년 정도 전부터 친구 S는 코인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 코인을 해보라고 조언했었다.(아주 지겹도록)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소소하게 코인을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의 수익률은 잘 모르겠지만. 다만, 나는 도무지 코인이 땡기지 않았다. 하도 권해서 알아보긴 했는데, 난 코인의 투자가치나 수익성보다는 그 위험성이 더 걱정되었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은 좋은 기술인 것을 알겠지만, 내가 걱정된 건 코인을 보는 사람들의 욕심이었다. 내가 보는 코인은 '21세기의 튤립'이었다.
- 유럽의 튤립파동(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D%8A%A4%EB%A6%BD%ED%8C%8C%EB%8F%99 )
1600년대 네덜란드를 뒤흔들었던 바로 그 '튤립'맞다. 내가 20대 초였다면, S를 믿고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의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30대에 접어든 이후, 나는 돌다리도 몇 번이나 두드려보고 나서야 아주 조심스럽게 건너는 성격이 되었다. 난 확실하지 않으면, 모험은 하지 않는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내 밭만 갈 뿐이지.
S는 이런 나를 정말 답답해했다. S도 코인이 튤립이란 건 알았다. 다만, 나와 다른 쪽에 무게를 두었다. '이제 곧 코인광풍이 몰아칠 테니, 이 기회를 이용하자. 지금 저렴할 때 사두었다가, 때를 맞춰서 팔면 꽤 쏠쏠한 수익을 남길 수 있다.'에 무게를 두었는데 이런 S의 생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코인광풍 초반에 대박을 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누구라도 후회가 들었던 때다.)
내가 코인을 하지 않은 것은 [안전제일주의]인 성격이 가장 크다. 사실 난 걱정되는 것 한 가지와 두려운 것 한 가지 때문에 코인을 하지 않았다.
먼저 걱정되는 것 한 가지는 "빠져나와야 할 가장 적절한 순간에 과연 내가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였다. 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참 어려운 사람이다. 시작하는 마음을 먹고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대신 한번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도 꾸준하게 밀고 나간다. 이렇다 보니 끝내야 할 때, 미련도 많이 남기게 된다. 즉, 주변에서 아무리 지금이 빠져나올 적기라고 말해줘도 못 나오고 비비적거릴 공산이 크다. 주식이나 코인에서 물리기 딱 좋은 성격인 거다. (난 고스톱이나 카드, 도박에도 완전 젬병이라 아예 손도 안 댔다.)
다음으로 두려운 것은 "투자에 대한 겁대가리 상실"이었다. S의 말대로만 움직였다면, 대박은 아니라도 쏠쏠한 재미를 보았을 거다.(애초에 내가 투자가능한 비용도 많지 않았으니까) 근데 이후에도 내가 이런 대박을 꿈꾸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물론 난 투자도 안 했고, 이건 투자로 수익을 내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난 투자를 하기 전부터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한 거고. 하지만 두려웠다. 맞다. 내가 쫄보인 거다. 코인에도 이러는데 다른 투자라고 뛰어들 수 있을까. 그래서 그냥 얌전히 내 밭이나 간 거다.
여튼 이런 나에게 S가 권한 것이 스팀잇이었다. 마침 나는 블로그에서 노는 게 조금 지루한 상태였던 터라 '다른 놀이터에서도 놀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스팀잇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일 년 정도 했나? 나는 스팀잇을 관둬버렸다. 글을 쓰고, 이웃들과 이야기하고, 보팅하는 것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나 난 스팀잇의 시스템이 너무 불편하고, 싫었다.
뭐랄까.. 와서 놀라고 마당을 깔아주긴 했는데, 딱 거기까지인 느낌이랄까? 놀려고 해도, 하고 놀만 한 게 없다. 주변에 돌멩이라도 있어야 땅따먹기나 공기라도 하고, 모래라도 있어야 오줌싸개라도 하면서 놀텐데.. 아무것도 없다.
하다못해 글을 써서 편집하고 정리하는 기본적인 편의성도 없었다. 카테고리를 나누고 정리하는 기능은 당연히 없었고, 무엇보다 콘텐츠가 가장 문제였다. 콘텐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 너무 빠르게 소모되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올려도 노출되는 건 순간에 불과하다. 지나가버리면 다시 보기도 힘들다. 심지어 내가 올린 콘텐츠를 내가 찾아보기도 불편하다. 어느샌가 콘텐츠의 내용과 질은 상관없이 서로 보팅을 하고, 코인을 모으는 수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좋은 콘텐츠를 굳이 올릴 필요도 없었고, 언젠가부터 그냥저냥, 그게 그거 같은 콘텐츠가 난무했다.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처럼 일부 끼리끼리 모여 보팅을 몰아주고 수익을 얻는데 집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애초에 스팀잇을 하는 주목적은 코인이지 콘텐츠가 아닌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난 콘텐츠로 놀려고 했으니 관심이 식는 건 당연했다. 지금 스팀잇은 어떤지 모르겠다. 뭐가 좀 바뀌긴 했으려나? 흠..
지난 주말에 내 스팀잇 페이지를 들어가 보았다. 4, 5년 전? 그즈음에 멈춰있다. 혹시나 싶어 이웃들 페이지도 가보았는데, 역시 지금까지 활동하거나 남아있는 이웃은 없었다. 흠.. 그래도 한때 잠시나마 놀던 곳인데 이렇게 사라져 가니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끄적끄적 적어보았다.
사실.. 스팀잇을 떠올리고, 스팀잇 페이지에 가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제 모처럼 게임 플랫폼 [Steem]에 접속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였다. '아.. 전에 여기랑 비슷한 이름의 뭔가를 했었지..'하고. 그나저나 Steem도 참 오랜만에 들어간 것 같다. 문제는 하고 싶은 게임이 없다는 거지만.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