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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l 04. 2023

OT-여덟. 북유럽 신화는 뭐가 달라?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북유럽 신화의 특징, OT

▷ 북유럽 신화는 인간적인 신화다.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말할 때, 인간적인을 넘어 '인본주의(人本主義)'신화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신의 형상은 물론, 신의 생각과 행동이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는 이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뒤지지 않는, 아니 그보다도 더욱 인간적인 신화다. 비록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인본주의'라는 거창한 닉네임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모습은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도 더욱 인간과 가까운 신화다.


- '신(新) 에다'의 삽화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Norse_mythology )


#01. 신과 인간의 형상이 같으며, 신과 인간의 생각과 행동, 삶의 방식이 같다.

: 신이라고 해서 그 형상이 인간과 다르지 않다. 전체적인 크기나 위계가 다를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인간의 형상과 신의 형상은 동일하다. 그리고 우리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과 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지 않다. 울고, 웃고, 다투고, 화해하고.. 우리가 현실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모습과 신들의 삶의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이야기인 신화에서 우리는 우리 인간의 삶을 보게 되는 것이다.


#02. 신도 인간처럼 늙고, 병들고, 죽는다.

: 요즘 인간을 표현하는 단어 중에 '필멸자(必滅者)'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단어 '모탈(Mortal)'을 번역한 단어로,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비롯한 판타지 작품들과 '디아블로(Diablo)'를 위시한 게임으로 인해 익숙해진 단어다. 쉽게 말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신(神)'은 전지전능하며, 영원불멸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에 대한 반대 역할이 인간이며, 인간은 당연히 필멸의 존재가 되었다.  


- 발드르의 죽음, 18세기 아이슬란드 삽화(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ldr )


 그러나 북유럽 신화에서는 이것이 인간을 넘어, 신에게도 적용된다. 분명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거의' 전지전능하다. 우리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능력을 지녔고, 우리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쉽게 해낸다. 그럼에도 그들은 완벽하지 않다. 신도 늙으며, 때로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죽는다. 다만 그 시간이 인간보다 많이 길 뿐, 신도 우리 인간처럼 결국에는 소멸하는 존재다. [시간], [운명], [죽음]. 제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이 세 가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03. 신도 인간처럼 완벽하지 않다.

: 앞서 언급했지만, 북유럽 신화의 신은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다. 세상을 창조하고, 아홉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그런 신들도 못하는 게 있다. 전지전능한 신임에도 마치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무언가 모자란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북유럽 신화 속의 신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신이 인간처럼 '불완전하다'는 속성을 지닌 것이다.


 이는 불완전함을 넘어 '역설(아이러니 : irony)'이 되기도 한다. 신으로서 가장 잘하는 것 또는 신으로서 지니고 있는 상징 자체가 문제가 되거나 결핍되는 경우도 많다. 단적인 예로, 지혜의 신은 한쪽 눈만 가지고 있어서 모든 것을 올바로 보지 못한다. 사랑의 여신은 세상 모든 것에게 사랑받지만 늘 사랑에 목말라한다. 심지어 연인들의 여신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모태솔로다.  




▷ 종교에서 이야기와 문화로 살아남은 신화다.


#01. 이야기로서의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는 다른 신화와는 다른 이야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세상의 창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신화의 이야기가 진행 중인 상태다. 물론 많은 신화에서 '멸망'이나 '종말'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상'의 멸망이나 종말일 뿐이다. 신은 건재하고, 신의 세상 역시 건재하다. 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도, 힌두 신화도 심지어 성경조차도 '현재진행형'의 형태를 취한다.


 그에 비해 북유럽 신화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는 이야기의 기본구성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세상의 창조(기)'에서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승)'를 지나, '발두르의 죽음(전)'이라는 거대한 전환점을 거치고, '라그나로크(결)'를 통해 마무리된다. 여기에 '라그나로크 이후의 이야기'라는 '에필로그'까지 갖추고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그 어떤 신화보다도 북유럽 신화는 이야기로서 가장 기본에 충실하며,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현재 종교로서의 속성을 잃어버리고 신화로 남은 것들 중에서 이처럼 충실한 이야기의 구조를 지닌 신화는 드물다. 북유럽 신화와 함께 언급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조차도 '기', '승'에서 멈췄다. '트로이 전쟁'을 '전'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결'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들의 이야기에서 영웅의 이야기를 거쳐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 세계수 이그드라실, 프리드리히 빌헬름 하이네 그림(1886.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Norse_mythology )


#02. 살아남은 신화


 유럽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기존에 있던 수많은 전설이나 신화가 사라졌다. 이는 비단 유럽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 세계에서 기독교가 전파된 모든 곳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기존에 믿고 있던 신앙은 물론이고, 전설이나 신화, 이야기는 모두 이단이 되어 파괴되거나 사라져야 했다. 그렇게 강력했던 로마제국의 신앙과 신화는 기독교로 대체되었고, 아프리카나 동방의 신앙과 신화는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어 복원이 불가능한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북유럽 신화'는 이 모든 파괴의 시작점이자 중심인 유럽에서 살아남았다.


 사실 북유럽 신화는 신앙으로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믿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른 종교나 신앙에 비해 유지된 기간도 길지 않았고, 로마를 점령한 기독교가 가장 먼저 칼을 겨눈 가장 손쉬운 대상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북유럽 신화는 살아남았다. 북유럽 신화는 신앙과 종교로서의 속성을 버리는 대신, 이야기와 문화라는 속성을 유산으로 남긴 결과였다. 그렇게 북유럽 신화는 유럽인의 삶 전반에 걸쳐 종교와 신앙이 아닌 이야기와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현대 서양 문화라는 저택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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