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큐브, 바드 단테, 단편, 이야기, 소설
▶ 예전에 적었던 짧은 이야기입니다.
마땅한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주인공의 이름으로 대신합니다.
처음에는 다른 이야기의 프롤로그 부분으로 사용해 보려고 시작했다가 별도의 단편이 되었습니다.
◇ Prologue 1 - 3
로이와 제이가 아직 조던에 대한 판결을 다투는 동안 나는 상황을 반전시킬 화젯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아, 글쎄~ 아저씨들! 나는 아직 댁들처럼 결혼하고 중년이 돼버렸다는 말은 듣기 싫거든요~?"
새로운 화젯거리가 생각이 난 것은 그때였다. 며칠 전 헌책방에서 찾아낸 책, '기사와 요정의 연대기'였다. 로이와 제이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려는 즈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너희들 기사와 요정의 연대기라는 책 기억해?"
"뭐? 기사.. 뭐?"
"기사와 요정의 연대기래잖아."
로이가 의아해하자 조던이 결혼이야기로 기분이 언쟎아져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야? 이번에 새로 나온 신간인가? 어디 출판사야? 제목이 너무 촌스러운걸.."
제이가 코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대답했다. 세상에나.. 자기가 제일 열성으로 만들었던 책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순간 약간의 허탈감이 몰려왔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뭐야? 제이, 잊어버린 거야? 너희들은 기억하지?"
제이, 조던, 로이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허탈김에 흥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 나는 마치 최후변론을 하듯 말했다.
"왜, 그거 있잖아. 뉴폼페이대학 문학출판부~! 최초이자 마지막 출판서적!"
순간 세 사람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로이는 손바닥으로 그렇지 않아도 넓은 이마를 쳤고, 조던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 '아하~' 하며 손바닥을 쳤다.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제이를 쳐다보았다. 제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이미 추켜올려놓은 안경을 위로 올렸다.
"제이? 기억하지?"
내가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제이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으.. 응."
마치 제이의 머리 위로 요즘 애들이 보는 만화에 나오는 커다란 땀방울이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제이는 당황했다. 그런 제이의 모습이 우스워서였을까? 유명한 출판사의 편집장을 곯려주고 싶은 장난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그 책을 찾아냈다는 사실!"
"어? 정말? 그게 아직 있었단 말이야? 우리도 안 가지고 있는 그 책을?!"
나는 그 책을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그것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감탄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시 그 책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을 했었지만 결국 낡은 인쇄기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겨우 회지 몇 장을 찍어내던 인쇄기로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만들겠다는 자체가 무리였다. 그것도 한 두 권도 아니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많이 찍어 판매까지 하자는 계획이었다. 어찌 보면 그때의 우리는 마치 작은 거인 출판사라도 되는 듯이 들떠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인쇄기는 이미 수명을 다해버렸고, 우리에게는 인쇄업자에게 맡길 여유도 없었다. 애초의 상상과는 달리(너무도 당연했지만..) 우리가 찍어내는 이런 수준의 책을 사줄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사태가 그렇게 되자, 우리의 열정도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찍어낸 책은 겨우 다섯 권에 불과했다. 한 권은 출판부 사무실에, 한 권은 학교도서관에 기증했다. 나머지 세권 중 한 권은 제이가, 나머지 두 권은 다른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관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저마다 졸업과 취업에 바빠지면서 결국 누구도 그 책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제이에게는 아마도 최초의 편집장으로서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야~ 정말 그때는 대단했었지. 우리 제이 편집장님이~"
"얼마나 무서웠는데, 새벽 2시에 여자 기숙사로 쳐들어와서는 이거 번역해주지 않으면 팬티만 입고 노처녀 사감방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해서 얼마나 기겁을 했었는지 알아?"
"아, 그랬어~ 맞아 맞아~"
"야, 너는 그런 말할 자격이 없어~ 인쇄기 돌린답시고 돌리란 인쇄기는 안 돌리고 연애질에만 활활 타오르던 게 누구였지~!!"
우리는 다시금 20대 초반의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즐거웠다. 그렇게 내가 찾아낸 책 한 권으로 우리는 자칫 영원히 잊을뻔했던.. 아니 잃을 뻔했던 우리의 청춘의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고 연거푸 부딪힌 술잔은 셀 수가 없다. 그때의 친구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에 한 잔씩. 책을 기리며 또 한 잔. 낡은 인쇄기와 그 역겹도록 지긋지긋한 잉크 냄새에도 한 잔. 그렇게 마시고 있는데, 귀에 익숙한 오래된 유행가가 들렸다.
"야~ 저걸 지금도 부르네?"
로이가 벌게진 얼굴로 빙긋이 웃었다. 뉴폼페이 대학의 교가 대신 부르던 노래였는데, 마침 이곳에서 술을 마시던 학생들이 한껏 술에 취해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무언가의 뒤풀이 중에 흥이 오른 모양이다. 우리는 옛 추억과 젊은 기분에 취해 그들과 함께 잔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까지 하나 둘 합세하면서 식당 안은 시끌벅쩍해졌다. 나도 흥겨운 마음에 그들과 더불어 술잔을 들었다. 나의 레모네이드와 세라의 기억에도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