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에 대한 작은 생각

by 하얀손

대략 40여 년 동안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최근 보냈던 9개월간의 사회생활은, 내게 모든 것이 정말 낯설고

두려운 신세계였다.

그래도 주유소에서의 셀프 주유나 은행 간 계좌이체 및 분리수거 정도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코스트코에서의 물건 정산은 'H'사 카드만 가능하다거나 전자레인지에는 유리 및 금속물질이 포함된

접시를 넣으면 안 된다는 사실 등은 아직도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최근 '당근'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하여 집에 있던 물품 몇 가지를 나눔 거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들을 만났었고, 여기에서 느꼈던 몇 가지 생각들을 짧게 적어보고자 한다.


(Episode 1)


주로 집안에서 생활하게 된 이후 나의 눈에 거슬렸던 것 중 하나는, 실제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이 제법

많고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 오래된 물건 중, 먼저 전동 킥보드와 골프용품부터 과감하게 없애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 나눔을 실천했던 전동 킥보드는 평소 '붕붕이'로 부르며 가끔 산책 용도로 사용했었는데,

"넘어져 다치면 어떡할 거냐?"라는 아내의 불호령 때문에 베란다 구석으로 쫓겨나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었던 애물단지였다. 그래서 이를 "당근에 내다 팔아 볼까?"라고 아내에게 물어보았는데,

살림 9단인 아내는 깔깔깔 웃으며 "당신이 그런 거래를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나눔으로 주세요"

라는 멋진 해법을 주었다.

그리고 붕붕이는 '당근'에 무료 나눔으로 등장하자마자 1시간도 안되어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고,

그중에서 학생으로 보이는 '봉천동 통통'님의 품으로 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무료 나눔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당시 붕붕이를 데리러 온 통통님은 예상대로 어린 친구였는데, 집 앞 놀이터에서 미소 지으며 서

있던 나를 쑥 훑어보고는 "감삼당" 이라는 짧은 멘트만 남기고 바람처럼 붕붕이와 같이 떠나갔다.

그 순간,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 아이의 시선 속에서 호구로 전락해 있는 나를 발견했고, 조금 더

성의(?) 있는 감사메시지를 기대했던 나의 불순하고 꼰대적인 생각도 한방에 무너져 내렸었다.

결국 첫 번째 나눔을 통해서 나는 '주고받는 사람이 같이 기뻐하는 것도 소중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는 물품이 필요한 분들과 사전 소통을 충분히 한 후, 내가 구매했던 제품

가격 대비 5% 이하 정도의 비용을 받고 나눔을 실천하자는 다소 비장한 원칙도 세우게 되었다.


두 번째 나눔을 실천했던 골프용품은, '공만 치면 돌아버린다'는 의미의 '공돌이'로 불리던 나의

애장품이었다. 골린이 시절에 "골프채가 비싸면 공이 잘 맞는다"는 판매상의 말을 믿고 구매

했었는데, 실력은 골프채와 무관하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베란다 구석으로 쫓겨나

붕붕이와 동고동락하던 신세로 있던 아까운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는 달리, 당근에 이름을 올린 이 공돌이 세트는 3일이 지나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가격을 더 내려보았지만 역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혀를 끌끌 차면서 "당근에서 골프 세트를 살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드라이버와 우드,

아이언, 웨지 및 퍼터를 모두 나누어 팔아보세요. 골프백은 공짜로 주시고요."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이 '분할 마케팅 전략'의 실행 결과는 대박이었다.

나는 또 한 번 수많은 러브콜과 함께 이 공돌이 세트를 2일 만에 완판 했는데, 낱개로 골프채를

구매했던 8분으로부터 "이 브랜드를 이 가격에?" 라며 진심 어린 감사의 메시지를 받았고,

처음으로 나눔에 대한 뿌듯한 보람도 느끼게 되었다.


세 번째 나눔을 실천했던 제품은 유기그릇이었다.

당초 세 번째 나눔은 계획에 없었지만, 두 번째의 나눔 성공에 심취했던 나는 새로운 희생양(?)을

결국 부엌에서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아내가 무척 아끼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사용 안 했던

유기그릇 세트였다. 원래 이 유기그릇들은 귀한 손님접대 등 특별한 날에 주로 사용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황동 재질이 약간 변색되는 문제도 있어, 아내는 이 그릇들을 반짝반짝하게 세척한

후 유리 장식장에 예쁘게 보관해 놓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유기그릇도 일부를 당근을 통해 나누면 어떨까?"라는 나의 당돌한 제안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본 후 "이건 가격 때문에... 쉽게 살 사람이 없을걸요, 잘 알아서

판단하세요"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였다.


나는 아내의 답변이 강한 부정이라는 것을 후에 알았지만, 당시에는 승낙의 의미로 잘못 이해했고,

기쁜 마음으로 즉시 당근에 유기그릇 2세트 샘플사진을 공지했었다.

그런데 공지 후, 1시간도 안되어 추가로 2세트를 더 살 수 없느냐고 문의하신 분이 나타났다.

집 앞까지 찾아오신 첫 번째 구매자는 70세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분이셨는데, "사용하기 편한

제품도 많은데 왜 유기그릇을 4세트나 사세요?"라고 여쭤보니,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지내시는데

가끔 아들과 손자들이 찾아오면 "더 좋은 그릇으로 식사를 차려주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그릇들을 반짝반짝하게 닦으며 남은 세월을 보내고 싶어요" 하시면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2장을 내게 주셨는데, 뭔가 울컥한 마음과 함께 "이 그릇들이 남은 삶의 행복한

동반자가 된다면 이 나눔은 의미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두 번째 구매자분은 첫 문의부터 2세트 말고 얼마나 더 유기그릇 세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전부 구매할 경우 얼마면 되는지? 질문하셨다. 그래서 왜 많은 유기그릇이 필요한지를 여쭤보니,

"몸이 아픈데, 그릇을 바꾸면 건강에 좀 도움이 될까 해서요"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왔다.

그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면서 나도 모르게 "필요한 거 전부 드릴게요, 가격은 걱정 마세요"

라고 회신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용 2세트 그릇만 제외하고 남아 있던 25종 그릇세트를 모두

택배로 보냈는데 "좋은 그릇을 주셔서 감사해요, 잘 쓰고 건강해지도록 노력할게요"라는 문자

답변을 받은 후, 진심으로 그분의 건강회복을 위해 기도했었다.

이 유기그릇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가고 있던 당시, 아내는 새로 이사할 집 정리

때문에 외출 중이었는데, 돌아와서 나의 자랑스러운 판매성과(?)를 듣고는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Episode 2)


내가 몇 가지 나눔을 실행한 후, 가장 중요하게 느꼈던 점은 사전 공감의 필요성이었다.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지식이나 재능, 물건 등을 주기만 할 때, 받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이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왜 더 많이 또는 지속적으로 주지 않는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준비도 되지 않고 절실한 마음도 없는 대상을 향한 나눔이란 큰 의미가 없는 행위이며,

도움이 꼭 필요한 누군가를 잘 찾는 것이 나눔의 좋은 시작점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눔이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실행해야 가족 등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붕붕이나 공돌이는 나의 영역이었지만, 유기그릇들은 아내의 영역인데

소유권자의 명확한 동의 없이 나눔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실수였음을 나중에 깨달은 것이다.

나는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Yes'의 의미가 2가지이며 끝까지 이를 확인해야 한다고 이해했었다.

즉, "네 말을 듣기는 들었는데, 해당 내용에 무관심하거나 동의하지는 않는다"와 "너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했으며 나도 동의한다"의 의미 차이를 목소리 톤과 고저, 그리고 제스처 등을 통해

확실히 판단하고, 만약 불확실하다면 재차 질문을 통해 확인받아야 한다고 배웠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장 생활동안, 나는 정확하게 'Yes' 의미를 이해했었다.


그러나 38년의 세월을 같이 한 아내의 'Yes'는 항상 진의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내는 유기그릇 거의 전부를 잃게 되자 말없이 눈물만 흘렸는데, 당황한 내가 'Yes' 했던 의미를

다시 묻자 그녀는 한참 동안 천장만 쳐다보고 말이 없었다.

불안한 평화가 계속되는 동안, 나는 "최소한의 비용은 받은 후 나눔 했다"는 변명을 계속했지만

아내의 침묵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영겁 같던 시간이 지난 후, 아내는 찬찬히 나를 바라보며 "그 유기그릇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시나요? 당신이 좋은 그릇으로 밥 먹고 싶다고 해서, 오랫동안 모았던 돈을 가지고

유기그릇 장인들이 만든다는 공방까지 찾아가서 정성껏 골라 사 온 거예요. 잘 보관해서 나중에

손주들한테도 줄 생각이었는데... 그렇지만 당신이 말했던 2세트 정도는 참을만해서 무심하게

'Yes'라고 했었는데..."라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결론적으로, 나는 누군가와 의미 있는 나눔을 실행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눈물이 동반됐다는

점에서 큰 실패를 하고 말았다.

대신, 나의 영역 안에서 아직 남은 재능이 있고 이를 기부할 수 있는 합당한 대상자를 찾는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새로운 나눔을 계속 시도해 볼 것이다.

이러한 재능 기부나 나눔이, 오랜 세월 동안 나의 부모 세대와 선배들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큰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은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국 대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