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서 슬프다
숏다리는 문방구에서 꽤 비싼 축에 속했다. 하나에 천오백 원이 넘는 로열 불량 식품이었기에, 아폴로나 뽀빠이처럼 쉽게 사 먹긴 힘들었다. 숏다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약간의 노동이 필요했다. 엄마 어깨 주물러 들이기, 아빠 흰머리 뽑아 드리기 등…. 어른들이 용돈을 주시면 바로 문방구로 달려갔다. 숨 고를 새도 없이 엄청난 콧김을 뿜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숏다리를 집었다.
숏다리를 사면 늘 문방구 근처 놀이터로 향했다. 흔들거리는 그네에 앉아 햇볕에 바짝 말린 나뭇가지 같은 다리 하나를 뜯어 그대로 입에 넣었다. 단맛이 다 빠질 때까지, 단단했던 식감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오래오래 씹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입만 움직이고 있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다리 하나만 봉지 안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른도 아이도 싫어할 리 없는 짭조름하고도 달달한 맛. 그래서일까. 아껴 두겠다고 집에 가져가면 아빠가 술안주로 슬쩍 챙겨 가기 일쑤였고, 가방을 잠시라도 방심하면 동생이 마지막 다리까지 삼켜 버리곤 했다. 가방 속에 고이 넣어둔 것이 빈 봉지만 남아 있을 때의 허망함이란….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 내게 숏다리는 늘 너무 빨리 사라져 버리는, 그래서 조금은 슬픈 불량식품이었다.
서른 살, 모든 게 숏다리처럼 너무나도 빨리 사라져 버린다. 문득 몇 년 전 사촌 언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옛날엔 어딜 가나 막내였는데, 이젠 어딜 가나 선배 아니면 언니야.”
이제 대학은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막내일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취업이 늦어져 서른 살 이후에도 막내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지만, 막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을 보내며 어리광을 피운다면, 나사 하나 풀린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어리니까 귀엽다고 봐주는 시기도 지났다. 책임과 눈치, 그리고 쌓여가는 연차가 자연스럽게 나를 ‘어른’의 자리에 앉혀 놓는다.
어릴 땐 선배들이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막상 내가 선배가 되고 보니 아직도 ‘선배’라는 타이틀은 무겁게 다가오고, ‘언니’라는 호칭은 종종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그네에 앉아 숏다리를 뜯던 초등학생일 뿐인데…. 누군가 내 시간을 한 번에 꿀꺽 삼켜 버린 것만 같다. 사실, 어렸을 땐 서른이 되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주말 연속극 속 주인공처럼 본부장이 되어 매일 치열하게 일하고 퇴근 후엔 비싼 횟집에 가 초밥을 마음껏 먹을 줄 알았다. 아님 잘 나가는 팀장이 되어 회사에서 엄청난 인정을 받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생각보다 평범한 하루를 씹고 뜯고 맛보며 살아가고 있다.
팀장은 커녕 사원증이라도 목에 걸고 다니는 걸 감사해하며 출근을 하고, 퇴근 후 떡볶이를 먹으며 야구 보는 걸 가장 행복해한다. 이 또한 참 좋은 삶일 텐데, 왜 배달 음식을 치우면서 현타를 백만 번 느끼고 10년 후의 미래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건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건 확실해졌지만, 정작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여전히 흐릿하기만 하다.
시간을 아껴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숏다리처럼 잘근잘근 오래 씹고 맛보며 천천히 넘길 수 있다면. 아마 가장 슬픈 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