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디기

인생이 힘들 땐 쫀디기

by 불량한 조작가

불량식품의 오래된 조상, 쫀디기. 어렸을 땐 교실마다 꼭 한 명씩은 쫀디기를 가져오는 아이가 있었다. 쫀디기를 가져온 아이는 마치 할머니가 김치를 쭉 찢어주는 것처럼 세로 방향으로 쫀디기를 뜯어 나눠주곤 했다. 그러면 주변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모여들었다.


물론 나도 그 수많은 아기새 무리 중 하나였다. 나는 호박 맛보다 밤 맛 쫀디기를 더 좋아했는데, 호박 맛과 밤 맛이 섞여 있는 쫀디기를 먹을 땐 늘 가운데 밤 맛만 쏙 빼먹고 나머지는 친구들에게 건네주곤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쫀디기는 구울수록 맛이 더 진해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문방구 앞에는 언제나 쫀디기를 굽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로 북적였다.


그렇게 달콤하디 달콤했던 쫀디기가, 서른이 되고 보니 더 이상 간식이 아니다. 배를 채워주진 못해도, 오래 씹히는 만큼 술값 아끼는 데는 제격인 ‘가성비 술안주’가 되어버렸다. 술잔이 비워지고 안주가 사라지면 남은 건 현실이다. 달콤한 여운은 금세 증발해 버리고, 맥주잔 위 거품처럼 내일의 피로와 알 수 없는 긴장감만 넘쳐흐른다.


시간이 흘러 아침이 오면 사무실과 회의실, 기획안과 엑셀 파일, 메신저 창 어딘가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한다. 쫀디기를 잡아 늘리면 금세 툭 끊어지듯, 내 인생에서 늘어나는 건 다 마신 커피 빨대이고, 줄어드는 건 통장 잔고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열두 살의 우리는 서른 살의 우리가 거북목을 붙잡고 모니터와 하루 종일 씨름하고 있을 줄 알았을까?


불량식품의 시조새답게 쫀디기는 아직도 우리 곁에 좋은 추억의 간식으로 남아있다. 물론 지금은 간식보단 안주에 조금 더 가깝다. 가끔 엄마와 맥주 한 잔을 할 때가 있는데 차가운 맥주에 잘 구운 쫀디기 하나면 그날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 달달한 맛으로 먹었던 쫀디기는 이제 씹는 맛으로 즐겨 먹는 술친구가 되었다.


마감 직전 “이 부분 카피만 살짝 바꿔줘요라고 하던 팀장님의 얼굴을 회상하며 한 번 씹고, 방향성 없는 회의 속에서 아이디어만 탈탈 털리던 순간을 떠올리며 두 번 씹고, 고객사 수정 요청에 밤새 붙잡았던 기획안을 생각하며 세 번 씹다 보면 어느새 쫀디기는 입안에서 눈 녹듯이 사라져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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