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카페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저녁이면 연주를 한다고 해서 자주 기웃거렸던 카페였다. 들어 가보니 연주는 곧 끝이 났다.
아메리카노 대신 밀크티를 시켰다. 마음은 아메리카노였지만 밀크티를 시킨 이유는, 축 처진 나에 대한 예우이자, 힘 좀 내보라는 의미였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아 힘들다.’ 하고 아직 내뱉지는 않았는데 이제 막 내뱉으려던 참이었다. 다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다. 지금은 반칙이지, 울컥하게. 이건 좀 위로였다. 좋아하는 곡이었다
어제 일기장에 그런 말을 적었다. ‘나는 꼭 알아서 해야지’ 그러다가 뭔가 또 억울해서. ‘알아서 할 것들이 왜 이렇게 많지, 언제까지’ 뒤이어 적었다. 엄마 옷자락 꼭 쥔 아이처럼 떼를 부린다. 저는 아직 어려요. 덜 컸어요. 이게 다 무거울 때가 있어요. 무서울 때도 있고요.
사실 많이 힘든 하루는 아니었다. 운동 후 엄마가 생각나 술빵을 하나 샀고 때마침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카페에 들어와 밀크티 한 잔. 사실 많이 힘든 하루는 아니었다. 운동 후 엄마가 생각나 술빵을 하나 샀고 때마침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카페에 들어와 밀크티 한 잔. 그리고 피아노 연주에 잠시 청승맞게 훌쩍였을 뿐이다. 별거 없는 하루였다. 별것 없었는데 별것 아닌 게 울고 웃게 한다. 별것도 아니면서. 그럼 별것 아닌 것 아닌가.
가게를 나가기 전 쭈뼛쭈뼛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연주 너무 좋았어요. 힘든 하루였는데 위로가 됐어요. 감사합니다” 마음을 전했다. 잠깐이었지만 사장님의 표정에서도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늘 어딘가 시린 수능 날, 이빨은 달달 떨리는데 한구석이 따듯하다. 내내 텅 비었던 카페의 사장님도 그런 밤이 됐으면 싶다.
그 사이에 힘들다를 내뱉으려던 나는 사라졌다. “살만하네.” 하며 사장님이 연주했던 곡을 들으며 집에 돌아간다. 힘들다 와 살만하네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별것 없었다.
약간의 책. 피아노 연주. 식은 술빵. 짧은 대화.
그 정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