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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Dec 15. 2021

단지, 이른 작별

피어있는 꽃보다도 아직 웅크린 꽃봉오리에 눈길이 간다.

언제쯤 피려나 기다리다가 다섯밤쯤 지났을 때. 너는 피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피었던 꽃들이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시들어 갈 때 꽃봉오리는 저만 혼자 여전히 어린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피지 못했으니 시들지도 못하는거지.


아름다웠던 꽃이 하나 둘 시들 때면 색이 변하고, 말라 이내 단념의 고개를 내린다. 그리 시들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열정이나 마음에 관한 것들이 그렇다. 처음 화병에 꽃을 꽂을 때부터 곧 시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건 마치 과거에 돌아간다면 oo를 다시 하겠습니까? 와 같은 질문처럼 결말을 다 알면서도 선택하겠냐라는 묻는 것 같다. 대게는 놓치고 말았을 때 포기해야했던 일에 대해, 아니면 시들어버린 꽃을 정리하며 울상이 지어질 때에 되물어진다.


한철 피고 이내 말라버린 끝을 보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면 꽃봉오리인 채로, 시작하지 않은 것이 나았을까. 하고.

어떤 것은 전자였고, 또 어떤 것은 후자였다.


나는 여전히 꽃을 꽂는다. 시들 것을 알지만 한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서. 나는 역시나 무모하고, 뒤돌아 후회를한다. 후회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도 꽃은 지는 것까지 가 생애이다.

슬퍼하지도 않고, 그저 제 할 일을 하듯 시든다.


사람도 고개를 툭 떨구며 눈 감는 날에

모두 작별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들은, 단지, 이른 작별을 한 것뿐이라고

시든 꽃과 그 꽃 봉오리를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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