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있는 꽃보다도 아직 웅크린 꽃봉오리에 눈길이 간다.
언제쯤 피려나 기다리다가 다섯밤쯤 지났을 때. 너는 피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피었던 꽃들이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시들어 갈 때 꽃봉오리는 저만 혼자 여전히 어린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피지 못했으니 시들지도 못하는거지.
아름다웠던 꽃이 하나 둘 시들 때면 색이 변하고, 말라 이내 단념의 고개를 내린다. 그리 시들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열정이나 마음에 관한 것들이 그렇다. 처음 화병에 꽃을 꽂을 때부터 곧 시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건 마치 과거에 돌아간다면 oo를 다시 하겠습니까? 와 같은 질문처럼 결말을 다 알면서도 선택하겠냐라는 묻는 것 같다. 대게는 놓치고 말았을 때 포기해야했던 일에 대해, 아니면 시들어버린 꽃을 정리하며 울상이 지어질 때에 되물어진다.
한철 피고 이내 말라버린 끝을 보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면 꽃봉오리인 채로, 시작하지 않은 것이 나았을까. 하고.
어떤 것은 전자였고, 또 어떤 것은 후자였다.
나는 여전히 꽃을 꽂는다. 시들 것을 알지만 한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서. 나는 역시나 무모하고, 뒤돌아 후회를한다. 후회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도 꽃은 지는 것까지 가 생애이다.
슬퍼하지도 않고, 그저 제 할 일을 하듯 시든다.
사람도 고개를 툭 떨구며 눈 감는 날에
모두 작별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들은, 단지, 이른 작별을 한 것뿐이라고
시든 꽃과 그 꽃 봉오리를 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