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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Dec 19. 2021

들여다보기

키가 컸다. 작지만 1.2cm.

키가 컸다라, 사용한지 10년은 된 낡은 말이다. 어떤 말들은 뱉을 수 있는 시기가 있어서 그 시기가 지나니 뱉을 일이 사라졌다. 꼭 키가 컸다 같은 말들이 그랬다.


지금의 키는 초등학교 당시의 키였기에 엄마는 내가 키가 엄청 클 줄 알았다고 했다. 어째서인지 키는 곧 멈췄고 그사이 친구들은 부지런히 자랐다. 맨 뒤에서 앞 칸, 그리고 다시 앞칸, 그러다 중간쯔음에 안착했다. 키는 변함이 없었지만 내 위치는 변했다.


요즘에 까닭없이 혼란스럽다는 말을 자주했다. 엉킨 이어폰 줄 처럼 별것 아닌 것을 풀어보겠다고 자주 끙끙 거렸다. 성장통이었나. 세상에 내 부피를 늘려 보겠다고 그 탓에 앓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왜 뭐든 복잡하게 생각 하는 걸까. 그러고 나면 곧 나를 탓하게 되서 서둘러 아냐, 그세상이 복잡한 탓이야 하고 위로한다.


눈 앞에 저 시계도 촘촘한 톱니바퀴들이 얽히고 설혀있고, 불을 밝히는 형광등의 속도 전선을 타고 굽이굽이 복잡하다. 술술풀리는 두루마리 휴지도 그 안에 얽히고 섥힌 종이조각들이 모여있다. 단순해 보여도 저마다의 복잡함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 속이 궁금해서, 알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세계의 속을. 속, 안이라는 공간은 곱씹고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고. 나는 들여다 보는 사람이라고. 나를 옹호한다.


나의 들여다 보기는 사소한 것들에 조명된다. 지나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도로 위의 풀한 포기나, 길가의 굴러다니는 과자봉지, 주자된 차들, 나무 위의 앙상한 나무가지. 그제는 열매를 시로 적겠다고 이틀을 낑낑 댔다.


눈길 받지 못해도, 덩그러니 놓여도. 그들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테니까 그들을 적어주고 이야기를 붙여주고 싶다. 가끔은 이 사소한 나도 누군가 봐주기를 바랬으니까.


커다란 지구를 생각하면 나라는 사람의 부피 또한 사소하다. 사소함이 사소함을 들여다보는 순간들. 그런 것들을 적고 싶다. 오래도록. 나는 복잡하게 사는 걸 놓지 않을 것 같다.


키가 컸다. 이 말이 좋아서 한 번 더 적는다. 사소한 일 하나를 들여다보고 곱씹는다. 지구에서 나라는 사람의 부피가 늘었다. ‘나는 자라는 사람이구나.’ 1.2cm라는 손한 마디 채 안 되는 길이가 기쁘다.

그 사소함이 기쁘다. 기뻐서 글을 적고 이틀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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