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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Dec 22. 2021

오솔길

자주 발길이 닿는 곳에는 길이 생긴다. 산에는 잘 닦인 등산로가 있는가 하면 사람이 지나다녀 생긴 오솔길이 있다. 가끔씩 산에 오르던 때가 있었는데 등산로와 오솔길의 갈림길에서 길 길을 잘못 들곤 했다. 그러다가 예상치도 못한 곳에 도착했는데 그게 꼭 나쁘지 만은 않았다. 닦여 있지 않은 날 것의 자연과 보이는 새로움이 좋았고 오솔길도 분명 어딘가로 통했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사람도 그랬다. 자주 발길이 닿는 곳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오솔길이 생겼다. 자주 가는 편의점, 동네 카페, 비슷한 출근 시간인 사람들. 길인 줄도 모르고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발자국을 찍다 보면 어느새 오솔길이 생겨있었다, 그들과는 안다고 하기에는 알지 못했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익숙하게 보던 사이였다.


그제는 자주 가던 카페에서 유자 애플티를 주문시켰다. 사장님이 “전에 먹었던 거?” 하며 웃으셨다. 그날 아침에는 아침마다 들리는 도넛 집에서 일하는 점원이 “커피도 하시죠?” 하고 물었는데 오솔길이 났구나 하는 순간들이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안다니. 그게 따듯해서 이럴 때면 샛길에 푹 빠지고 만다. 돌아돌아 샛길로만 다니고 싶어진다. 사실 등기 교환처럼 나도 그들에 대해 알게 된 점이 있다. 사장님은 한국어를 공부하신다는 것. 점원 분은 2-3일에 한 번 아침 타임 근무를 하신다는 것. 둘 다 검정 망을 사용하여 머리를 묶는다는 것. 늘 내어주는 입장보다는 손님으로 받는 입장이라 줄 것은 없어 되도록 정중하고 크게 인사를 한다. 날씨가 좋은 날, 날씨가 좋지 않은 날 핑계 삼아 한 마디 건넨다.


자주 가지 않게 된 곳들은 길이 사라지기도 했다. 전 직장 근처의 편의점 사장님이 그랬고 그 옆 옷 가게 사장님도 그렇다.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이제는 가지 않게 된 어느 골목의 알았지만 안다고 하기에는 몰랐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안녕히계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또 오셨네요” 되도록 갈고닦은 정갈한 말들이 오고 갔던 길을. 이 마음 저 마음 손때 묻지 않아 모름으로 정갈했던 길을.


언젠가 까닭 없이 일기장에 ‘오솔길 같은 내 삶아,’ 하는 문장을 적은 적이 있다. 샛길 같은 삶은 포장되지 않아 어디든 길이 될 수 있지. 내가 또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고 어떤 길들이 생길지는 알 수 없지만 괜찮을 것 같다.


어디서 인가 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물길이 흐른다는 말. 나는 곳곳에 오솔 길이 많으니 비가 오면 곧, 흐를 수 있겠다.


그리 퍽퍽하지만은 않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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