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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Dec 28. 2021

국어시간

in 제주도

제주의 눈은 서울과는 달랐다. 건조한 눈 스프레이를 뿌려둔 것 같아 만져보았다. 스티로폼 알갱이처럼 생긴 것들이 쌓여있다. 눈은 견딜 수 있는 곳에만 쌓였는데 제 한 몸 겨우 지탱하는 억새는 지나치고 흙빛 돌 위에는 한가득 머물렀다.

흰 눈 사이로 따지 않은 귤과 피지 않은 동백이 널렸다. 이름을 모르겠는 갈색 새들은 콩콩 뛰며 나무 위의 눈을 털어내고 햇빛이 비치자 눈들이 툭툭 떨어진다.


콩콩, 툭툭. 소리를 발음해 보면 실제 모습과 같은 것이 많다. 먼저는 퐁당퐁당, 퐁에 오므려졌다가 당에 펼쳐지는 입모양이 돌멩이 떨어져 치솟았다가 물결 펴지는 모습과 닮았다. 부스스도 새어나가는 스스 소리와 건조한 결이 닮았고 팔딱팔딱은 가벼운 팔과 튀어 오르듯이 발음되는 딱. 물고기가 몸을 구부렸다가 딱! 하고 튀어 오르는 모습과 닮았다.


이곳에서 언어를 다시 배운다.

툭은 내던지는 듯한 발음처럼 커다란 눈덩이가 나무에서 힘 있게 떨어지는 것


우수수는 새어 나오는 발음 처럼 쌓인 눈송이들이 나뭇잎을 타고 흩뿌리듯 떨어지는 것


웅크리다는 오므라진 입 모양처럼 붉은 동백의 꽃망울이 겹겹이 동그랗게 오므라져 있는 것


푹은 튀어나오는 입술처럼 쌓인 눈에 발이 푹하고 빠지는 것. 톡은 짧고 간결하게 입천장에 닿는, 어깨 위 떨어지는 눈송이의 모습. 톡톡톡. 톡톡톡. 뒤돌 때마다 하얗고 아름다운 것이 널려있었다.


그곳에 낡고 오래된 언어들을 버리고

새 언어에 태교 하듯 흰 눈을 보며

하얗고 정겨운 언어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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