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동 Oct 25. 2023

"나랑 같이 살자"

동거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

제주 와서 처음 해본 것들이 많다.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해봤고, 처음 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여행을 가고, 에메랄드빛 색깔의 바다에서 서핑도 해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텐트 안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이렇게 처음 한 것들 중 가장 이색적인 것을 뽑으라고 한다면 '동거'이다. 제주에서 만난 인연과 함께 현재 4개월째 동거 중이다. 거의 연애 한 달 만에 같이 살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처음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낼 때 먼저 나와서 방을 구하고 살고 있었다. 그 이후 나도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방을 구하려던 그때 여자친구의 설레는 말 한마디. "같이 살자" 예전에 내가 먼저 동거에 관해 말을 꺼냈을 때 딱히 긍정적인 반응이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도 좋고 막상 같이 살면 불편할 수 있으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방을 구하고 있을 때 건넨 이 한마디는 막상 집을 구하려고 직방이나 다방 같은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곤경에 처해있을 때 정말 등 뒤에 날개가 보이는 듯했다. 같이 살자는 말 뒤에 부끄러운 듯 말 끝을 흐리면서 그녀가 말했다. "아니.. 방세도 반씩 내면 나도 좋고 그리고 계속 붙어있을 것 같은데 괜히 방 두 개를 구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나는 여자친구 집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동거를 하기 시작하면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들 중 가장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식(食)'인 것 같다. '물론 당연히 먹는 취향이 비슷하니깐 잘 만나고 데이트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데이트와 동거는 다른 느낌이다. 보통 주말에 한 번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 많아야 두 끼정도 먹지만 막상 동거를 해보니 하루에 한 번은 같이 먹는다. 보통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아무거나 먹는 편이다. 그런데 같이 있을 때는 어떤 메뉴를 먹을지 고민하고 먹는다. 이때 취향이 잘 맞지 않는다면 하염없이 배달의 민족 어플을 찾아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심을 같이 먹는 편이다. 보통은 내가 요리해서 같이 먹지만 가끔씩 자고 있을 때 여자친구가 미리 일어나서 요리를 하고 "얼른 일어나! 내가 밥 해놨어"라는 소리를 들으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 차려진 밥을 먹으면 이런 게 동거의 장점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친구가 뽑은 가장 맛있는 나의 집밥 후보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흔히들 많이 동거를 하면 싸운다고 하는 위생, 청결의 문제이다. 데이트를 나간다 하면 당연 깔끔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잘 정돈되어 있는 모습으로 나갈 것이다. 나간 직후 자기의 방은 더러워져있어도 말이다. 물론 깔끔하게 정리된 침구류들, 머리카락 하나 없는 바닥, 각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루 이틀 정도에 나태함이 주는 행복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포장하지만 '귀찮다'가 맞다. 매일매일 하기에는 너무나도 귀찮은 것들이다. 그래도 '이맘때쯤 치워야지'하는 정도가 맞으면 서로에게 쓴소리 안 하고 살아갈 수 있다. 혹은 더럽다 싶으면 누가먼저랄 것 없이 청소를 시작한다. 한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같이 주섬주섬 움직이기 시작한다. 만약 '아 진짜 더러워서 같이 못 살겠네'라고 생각이 든다면 정말 동거하기 힘들 것이다.


동거의 장점으로는 서로 어여쁘고 멋진 모습을 보면서 데이트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에 대해 더욱 진실하고 자세히 알아감으로써 그 감춰진 내면의 모습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같이 살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서 서로에게 힘이 된다. 또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옆에서 응원해 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어떤 직업이나 일을 하더라도 나의 1호 팬이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해주는 느낌이다. 옆에서 감시(?)를 하고 있으면 지금 쓰는 글쓰기도 더 잘 된다. 



예전에 혼전동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다들 개인적인 의견은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동거해 본 결과 나는 매우 추천한다. 아직 미혼이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살아감으로써 이런 결과가 있었다고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마지막으로 여자친구에게 동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고 그 답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동거를 하면 가족에게 느끼는 애틋함을 연인에게서 느낄 수 있다. 꾀죄죄한 얼굴과 같이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본의 아니게 금방 들켜버린다. 그 모습마저 사랑해 주는 서로를 보며 사랑은 더 깊어지고 돈독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둘만 아는 모습, 둘만 아는 시간들••• 둘만 아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애틋함과 소중함은 배가 되는 것 같다. :) "


매거진의 이전글 "이건 글이 아니라 생각 덩어리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