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외국의 차량렌털 업체에서 한국인은 쉽게 구분이 된다는 말을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다.
렌털한 차를 반납받은 뒤, 기록을 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몇 배는 주행기록이 많다고 한다.
여행을 가서도 새벽부터 잠을 설치며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여행지를 다니는
한국인의 근면성은 세계 최고였다고 한다.
즐기러 간 여행에서 그렇게 스스로를 자학하듯이 근면하게 여행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하는 모양이다.
해외여행의 그런 모습 못지않게 튀는 우리의 모습 중 하나가 때를 미는 문화다.
알려지기로는 우리처럼 때를 미는 나라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하고, 이태리(??) 조차 이태리타월로
때를 미는 일은 당연히 없다. 사실, 목욕은 위생의 목적도 있지만, 피로를 풀고 여유를 즐기는 행위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는 특유의 근면성을 버리지 못하고 그 후덥지근한 목욕탕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때를 민다. 밀다보면, 물에 불은 때는 더욱 잘 나오고, 그 모습에 격앙되어 그야말로 자기 껍질을
벗겨내려는 듯, 무자비하게 때를 민다. 그렇게 노가다에 가까운 목욕을 하고 나면, 기진맥진해져
박카스 같은 자양강장제를 찾아 마시고 기력을 찾기도 했다.
좀 살기 시작한 80년대 이전에는 목욕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나 하는 연례행사였다.
그렇기에 거의 반년 가까이 묵혀놓은 때를 한꺼번에 밀어버리겠다는 비장감에 잔혹하게 껍질을
벗길 듯이 때를 밀었을 거다. 그런 세월을 오래 지내다 보니, 때를 적당히 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무의식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때를 미는 행위는 어쩌면 과거 못 살았던 시대상이 반영된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점차 들면서 때를 미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그야말로 악착같이 때를 민
것은 그래야 시원하고 후련하게 목욕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케이블 tv 영화에서 거품 목욕하는 장면을 봤다.
사실, 어릴 때 할리우드 영화에서 거품목욕 장면을 근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본 기억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 같은 선진국 사람들이나 부릴 수 있는 여유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집에 욕조도 있는데, 지금이라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 대강 비누로 거품을
내 보았으나 잘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비눗물이 둥둥 떠다니니, 기분은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드러운 샤워솜으로 대강 대강이지만 구석구석 닦으면서도 전반적으로는 따뜻한 물에 온몸을
담근 편안함을 느끼며 목욕을 마쳤다. 목욕을 마치고, 살결을 만져보니 때를 밀었을 때와 다를
것 없이 맨들맨들해져 있었다.
이게 되네?
라는 놀라움과 함께 떼를 밀었을 때와 뒤지지 않을 정도의 청결함이 만족감을 더 올려주었다.
그 뒤로도 몇 번 같은 식으로 목욕을 했는데, 제법 만족스러웠다.
이제는 때 안 민다. 목욕이 힘들지도 않고, 편안하고 즐겁고 자꾸 하고 싶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거로 돌아간다면 때를 밀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언제 다시 목욕할지 모르는데, 한 번 목욕할 때 왕창 벗겨놔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테니까..
하지만, 이제 매일 샤워를 하고, 집집마다 욕조도 있는 세상에서 굳이 땀나게 껍질 벗기듯이
때를 밀 필요가 있을까? 선진국 국민이 되었지만, 미친 듯이 치솟는 물가 때문에 선진국 수준이
삶을 즐기기 어렵지만, 목욕만큼은 이제 여유 있게 선진국 국민답게 여유 있게 즐길 때가
되지 않았을까?
떼를 밀면, 정말 피부 껍질 벗겨져서 건강에도 안 좋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