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예상에 없던 미션이긴 한데 오랜만에 블루(우울)가 찐-하게 찾아와서 3일을 고생했다.
그 첫째 날 계속되는 답답함에 날이 더워 기운도 없어서 오랜만에 낮술+혼술을 했다.
망갱이는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고 자주 마시지도 않는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누구보다 굉장한 텐션으로 잘 놀 수 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동기들이나 친구들과 종종 마셨던 것 같은데, 다들 취업하거나 졸업하니 그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망갱이는 술보다는 음식이 주류다.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을 1~2잔만 곁들이는 정도를 좋아하는데 어차피 집에서는 절대 못 먹는다.
아버지는 본인은 잘만 드시면서 '너는 친엄마가 간암으로 죽었으니 절대 한 방울도 마시면 안 된다'며 술의 ㅅ자만 꺼내도 역정을 내신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하신다는 게 어쩔 땐 더 큰 상처가 된다. 나한테도. 지금 내 앞에서 같이 밥 먹고 있는 엄마한테도.
덕분에 부모님과 맥주 한 잔 하며 떠들거나 간단한 반주는 꿈도 못 꾸는 로망이 되었다.
아버지의 염려와는 다르게 밖에서는 적당히 잘 마셨으니 나름 만족한다. 정말 퍼마시고(?) 싶은 날엔 1년에 한 번 정도 친구들이랑 저렴한 호텔방을 잡거나 친구 자취방에서 잔다.
블루가 어제 끝났는데, 그래서인지 아직도 센치한 기분이 남아있다.
어쨌든 망갱이는 아주 오랜만에 술을 마셨고, 그것도 심지어 혼술이었고, 낮술이었다.
점심을 케이크 한 조각으로 대신했기에 허기가 졌던 망갱이는 퓨전 중국요리집에 들어갔다.
말만 퓨전이지 메뉴는 중국집이랑 똑같다. 대신 '요리'메뉴가 한 그릇 분량으로 나와서 사람들이 중국음식을 한두 잔 하면서 저렴하게 즐기기 좋은 장소이다.
4시라서 손님은 세 테이블 밖에 없었다. 주말 등산을 마치고 온 아줌마 아저씨 4명, 그리고 커플 두 팀.
먼저 시원한 생맥주 500cc와 삼선짬뽕 한 그릇을 시키고 맥주를 들이켰다.
시원하고 따가운 맥주가 목을 적셨다. 분명 첫 입인데 1/3은 마신 것 같다.
냉동 해물이겠지만 듬뿍 들은 해물을 마음껏 건져먹다가 국물도 여러 번 떠서 마셨다.
망갱이에게 면은 주목적이 아니었나 보다. 한두 번 후루룩 먹고 말았다.
혼술은 온전히 내 속도대로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생맥 한 잔이 다 비워질 때쯤 고기가 땡겼다.
맥주 한잔에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니. 가볍게 둥둥 뜨는 마음에 후레쉬 한 병과 탕수육 한 그릇을 시켰다.
갓 튀긴 바삭하고 뜨거운 탕수육에 소주 한 잔. 캬...
아 근데 페어링이 좀 잘못된 것 같기도. 탕수육과 맥주 / 짬뽕과 소주 아닌가? 아무렴 어때, 맛만 좋네. 하며 이번에는 소주와 짬뽕국물을 같이 먹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눈치 보지도 않는다. 음식도 마음껏 원하는 부분을 즐길 수 있다.
블루여서 시작한 혼술이었기에 그리 이롭진 않겠지만, 인생 어느 부분엔 이런 한 편도 필요한 것 같다.
적당히 먹고 나오니 5시 반. 아직 초저녁이다. 음료수 하나 사들고 조금 돌아다니다가 시에서 만든 청년 쉼터에서 잠깐 잤다.(졸았다에 가깝다) 최근에 생긴 것 같은데 무료 스터디 카페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서 너무 좋다. 돈 없어도 청년이라면 아무나 쉴 수 있는 공간이라니.
하루 종일 답답해서 방황하다 술기운에 살짝 나를 맡기니 나름 해방되는 느낌이 들고 좋았다.
물론 지속되면 알콜릭이 되는 지름길이겠지만, 나도 가까스로 참고 참아서 하는 행동이니 조금만 면죄부를 줘 본다. 이쯤 되면 망갱이가 굉장히 술꾼인 줄 알겠지만 1년에 3번 마실까 말 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