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활발한 성격이었던 망갱이는 극도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면역력 저하를 겪은 뒤 자퇴를 하고, 건강을 바로 챙겨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출근했다가 저녁에 오셨고, 망갱이는 홀로 우울감에 휩싸여 한동안 방에서만 지냈다.
방 안에서 뭘 했냐고 물어본다면, '잤다.'
진짜 잤다. 배고파서 깨어 뭘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눈을 감았다. 딱히 먹는 약이 없었는데도 잠은 쏟아졌고, 가늠해보니 하루에 스무 시간 정도는 잤다.
밖에 나오지 않다 보니 잘 씻었을 리도 만무하다.
매일같이 잠옷 차림이었고 낮과 밤 모두 자는데 부지런히 씻었을 리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는 힐링이라는 면목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피폐해져만 갔다. 이렇게 몇 달 며칠 히키 생활이 지속됐다.
어느 날 핸드폰을 한참 보다가 우연히 우울한 사람이 하루에 꼭 해야 하는 일 리스트를 보게 되었다.
그중엔 규칙적인 기상, 취침과 더불어 '저녁에 꼭 샤워나 목욕하기'가 있었다.
처음엔 무슨 씻는 게 우울감을 덜어주려나, 상관없겠지 하며 넘겼다.
하지만 히키 생활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은 증폭했고 나는 리스트를 하나하나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별로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밤낮이 바뀌든, 방에서 나가지 않았든 저녁 언저리 비슷한 시간에 꼬박꼬박 씻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하루 중 개운하게 리프레시되는 시기가 생겼다. 그리고 잠을 자더라도 뽀송한 기분에 좀 더 죄책감 없이 잠에 들었다. 잠자리가 편해지자 드디어 '오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들은 평범한 일이지만 오전에 일어나서 '깨어있고' 오후엔 피곤해서 '밤에 잠들었다.'
생활 패턴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고, 의지가 개미 눈곱만큼이나 마 생기니까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난 천천히 방을 탈출했다. 처음 나와서 한 일은 '식탁에서' 엄마가 만든 밥과 여러 가지 나물반찬을 먹은 것이었다. 그냥 집 반찬이었지만 너무너무 맛있었다.
히키 생활은 탈출했지만 우리 삶에 우울은 언제든지 찾아온다. 그 깊이가 매우 깊어지는 경우도 있고, 맛있는 걸 먹으면 풀릴 잔잔한 크기도 있지만 이럴 때마다 나는 꼭 내 생활을 체크해본다.
(인간관계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 이 경우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일이지만, '아무 일도 없을 때 오는 우울함'을 대처해야 하기 때문)
1. 기상과 취침시간이 일정한가. 또한 질적으로 충분한 수면(7시간)을 갖는가. 너무 많이(8시간 이상) 자지는 않는가.
2. 규칙적이고 즐거운 식생활과 일정한 운동을 병행하는가
3. 매일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4. 그날그날 할 일을 적당히 분배하고 잘 끝내는가
5. 공들여 씻는가, 립밤, 로션 등의 최소한의 가꿈을 빼먹지 말고 하는가
여러분에게 '씻는 일'이란 뭔가? 귀찮은데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 사람이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하려면 꼭 해야 하는 기본?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서 빨리 끝내야 하는 것?
망갱이도 어렸을 땐 부모님께 '물 아까우니까 빨리 씻고 나와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기숙사 고등학교를 1년 다녔기에 '10분 만에 목욕하기' 등에 두각을 나타냈다.
사람이 씻긴 씻어야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씻고 나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전혀 공들여 씻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분, '공들여 씻기'란 가장 원초적으로 나를 '아껴주는' 것이다. '가장 쉽고 따뜻한' '나를 위한 나의 터치'이다. 마치 원숭이가 매일 자신의 털을 촘촘하게 고르는 일과 같다.
'공들여 씻기'의 첫걸음은 일단 물건을 구비하는 것인데, 자신이 쓰는 '폼클렌징, 샴푸, 린스, 바디워시...'중에서 딱 한 가지만 신경을 써서 구매해보자.(더 많은 제품을 쓴다면 그것들도 좋다) 매번 엄마가 사다 놓거나 명절 선물로 들어온 케라시스와 도브 비누로만 씻지 말고 딱 한 가지만 '비싸고/향이 좋고/보습력이나 효능이 좋은' 제품을 직접 사보자.
선물하기 좋은 바디제품 브랜드에서 참고해도 좋다. 러쉬, 이솝, 논픽션 등의 적당한 제품을 나에게 선물해보자. 돈이 너무너무 아깝다면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브랜드도 괜찮다. 대신 저렴해도 되니까 꼭 한 번 자신이 직접 골라보자. 좋아하는 향을 따져가면서.
개인적으로 망갱이는 러쉬의 '로즈 잼'이라는 바디워시를 골랐다. 달짝지근하고 끈적한 향이 은은하게 남는 바디워시다. 색도 예쁘고 자기 전에 이불을 뒤척일 때마다 느껴지는 향이 적당히 달달해서 좋다.
러쉬의 로즈잼 은은히 달달한 장미향이다
'공들여 씻기'의 키 포인트는 '구석구석 천천히'이다. 몸은 접힌 부분(무릎 뒤나 사타구니, 목 등)을 꼼꼼히 씻고, 얼굴은 귀가 접힌 부분 뒤와 T존을 충분히 씻어준다. 내 몸 전체를 가꾼다는 느낌으로 빠진 곳 없이 잘 씻어준다.
2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은 때밀이 장갑으로 때를 밀어준다.
꼼꼼히 한다면 온 몸 때밀기가 은근 힘들다. 그래도 유산소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밀어주자. 다 씻고 시원한 이온음료나 우유를 마셔도 아주 좋다.
구석구석 씻으면서 씻을 때 나와 충분히 대화하면 금상첨화이다. 망갱이는 씻을 때 생각한 걸 대부분 가볍게 까먹는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이.
'공들여 씻기'를 습관 들였다면 최소한의 외모 가꾸기 2 스텝으로 넘어가면 된다.
손발톱을 정리하거나 눈썹 칼로 눈썹 정리, 면도칼로 수염 정리 등이 그것이다.
향이 거의 없는 오리지널 립밤과 화이트 로션, 핸드크림 등도 놓치지 않고 발라주자.
나 같은 경우엔 쉽게 생각해서 '물이 닿은 후엔' 꼭 발라준다. (화장실 가서 손 씻고-핸드크림/양치 후-립밤/아침에 세수 후-얼굴 로션/저녁에 씻은 후-얼굴 및 바디 로션/자기 전-핸드크림과 립밤)
이것들도 습관화되면 자연스레 온전히 나를 위한 외모관리에 관심이 가고, 점차 나의 단점은 커버하고 장점은 돋보이는 메이크업에 도전한다. 파다한 '미의 기준'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과 달리, 기본적인 외모관리는 자존감 토대에 도움이 되며 더 나아가 후에 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만들어줄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씻기'가 '공들여 씻기'로 발전하면 우울감을 극복하고, 생활 패턴을 잡아주고, 정체성 형성에까지 도움을 준다. 여러분도 한 번 '공들여' 씻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