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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Jan 09. 2023

오늘의 내가 품은 작은 희망

50일 동안 매일 글쓰기, 7일차

23-01-07

일을 마치고 도서관에 가는 길.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빌릴 예정이다. 토요일 오후 시간이라 도로에 차가 많다. 네비의 안내 없이 감에 따라 가다 가장 비효율적인 동선을 만들고 있다. 신호에 자주 걸려 멍하니 정지해 있는 시간이 많다. 갓길에 주차한 차가 우회전을 막는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오늘따라 마음이 고요하다. 도로에서 쓰이는 시간을 유독 아까워하며 바짝 신경을 세우는 내가 오늘 만큼은 이 낭비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신호 대기 중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후 짧은 터널을 지나는 지점이었나,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엄마랑 둘이 여행을 가야겠다 생각했다. 어딜 가야되지? 다시 신호 대기. 밴드를 켜 사람들이 쓴 글을 슥슥 읽던 중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다시 출발.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코 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핑 돈다. 이내 딴 생각을 한다.

집에 돌아와 곰국 한 그릇 말아 먹고 다시 집을 나섰다. 지하철 끄트머리에 앉아 영양제 하나를 주문하고 빌린 책의 프롤로그를 읽었다. 일찍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 쓰여 있다. 챕터 하나를 끝내기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해 죽음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조금 멋진 철학자의 말이 있어 두어번 반복해 꼭꼭 씹어 읽어봤을 뿐이다.

볶음 우동을 먹으며 알쓸인잡 4화를 본다. 주제는 기적. 아까 잠깐 들여다 본 책이 떠오른다. 인간은 생의 유한함을 알면서도 기적, 희망, 미래를 꿈꾼다.

”나에게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한다는 거거든요. 희망 없인 일기를 쓰지 않아요.” - 이호

오늘도 나는 내 생의 의미와 목적은 알지 못한채 일을 하고 영양제를 사고 밥을 먹었다. 글을 쓰며 하루를 돌아본다. 어떻게 평소와 달리 느긋한 마음으로 운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틀 전에 썼던 일기가 생각났다. 여유있게 운전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남겼던 짧막한 글이다. 그 때의 뿌연 장면과 감정을 가지런히 글자로 옮겨내는 순간 ‘온순한 운전자’의 자아가 미세하게 스며들었나 보다. 과거의 기록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며칠 뒤 금새 화난 운전자가 되어있을지라도, 하찮은 일기 한 대목에 의미를 새겨 본다. 또 작은 희망을 품고 오늘의 나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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