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전능의 역설이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그리고 도전적 사유를 가진 이들에게 하나의 물음으로 던져져 온 것이다. 전능한 존재가 만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자신조차 들어 올릴 수 없는 돌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단순해 보이는 물음이 실은 얼마나 깊고 은밀한 철학적 함정을 품고 있는지 짐작하는 자는 드물다. 그 표면은 매끄럽고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아래에는 무한히 얽혀든 생각의 줄기가 그 근본을 탐구하려는 자의 정신을 집요하게 잡아끄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해석은 전능의 개념이란 무한한 힘을 소유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힘이 반드시 논리적 모순을 초월하여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능이란 결코 이성의 법칙을 무시한 채 초월적으로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전능은 스스로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으며, 모든 것이 가능한 그 무한한 능력 또한 논리의 법칙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이 질문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으며, 전능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논리적 불가능성에 대항하여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두 번째 해석은 이른바 전능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틀 안에서 재정의하려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전능을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기보다, 논리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든 것에 제한 없이 관여할 수 있는 힘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전능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무한하고 끝없는 힘의 상징으로 간주하되, 그 힘이 논리적 가능성의 경계를 넘어서지는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 즉, 인간적 사고 속에서의 전능은 마치 한없이 펼쳐진 가능성의 풍경 속에서 존재하지만, 그 가능성 역시 혼란을 허용하지 않는 질서와 논리에 의해 규율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해석은 전능의 본질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을 의미할지라도, 그 ‘모든 것’ 속에는 논리적 모순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전능이라는 힘은 스스로 그 자신의 능력에 제약을 가하지 않으며, 전능의 역설이 그 본질을 침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인류가 획득하는 일은 아마도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전지하지 않기에, 만약 전능한 존재가 실재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인식과 이성은 결코 그 본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단호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나는 전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두 번째 해석이 가장 적절하다고 믿는다. 전능은 논리적 가능성의 한계 안에서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역설을 이해하며, 때로는 그 역설을 창조하며, 다시금 그 역설과 마주한다. 결국 나 스스로가 하나의 역설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능이라는 개념을 차원의 문제로까지 확장하여 사유해 보아야 한다.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는 보다 낮은 차원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식하고 그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낮은 차원의 존재는 결코 그 이상의 차원에 속한 실체를 인식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만일 2차원 세계에서 살아가는 어떤 생명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생명체에게 모든 것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에게는 깊이와 부피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은 단지 평면이라는 한정된 세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느 순간 3차원의 물체가 이 2차원 세계를 지나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3차원에서는 평범하고 무심한 사건에 불과할지 몰라도, 2차원의 시점에서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들은 단지 물체의 단편적 형상을 순차적으로 바라보겠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마치 신비로운 환영이 순간적으로 그들 앞을 지나간 것처럼 경이로울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 보자. 고차원의 존재는 하위 차원의 형상을 명확히 볼 수 있고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지만, 하위 차원의 존재는 결코 그 이상을 볼 수 없다. 이는 단지 형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들의 사고와 개념까지도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마치 2차원 생명체가 3차원 물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 역시 더 높은 차원에서 비롯된 실체의 본질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3차원의 시각으로 4차원의 존재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유동적인 모습으로 보일 것이며, 실상은 우리가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 그림자에 불과한 단편을 마주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4차원에서 비롯된 음향이나 형상이 우리 세계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지 단일한 연속적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나의 사고를 뒤흔들만한 존재가 내 시야에 나타났다. 그녀 -이하 밀라르카- 는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와 예측 불가한 행동으로 나를 혼란에 빠뜨렸던 그녀는 마치 나보다 높은 차원의 진리에 접근한 듯 보였다. 그 무심한 눈빛 속에서, 나는 그녀가 그 무언가의 실마리를 붙잡고 있음을 감지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가 알고 있는 그 진리는 어쩌면 나보다도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그녀가 언젠가 나보다도 더 높은 차원으로 오를 열쇠를 손에 쥐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며, 그녀가 나의 존재를 꿰뚫어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한계를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 마치 나처럼 그 자체로서 하나의 역설이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전능하지만 전지하지는 않다. 그런 내가 미처 그녀의 존재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다. 반대로 그녀는 전지의 가능성을 지녔으나, 전능하지는 못하다. 그녀의 육체는 평범한 인간의 것과 다를 바 없으며,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그 진리를 세상에 전파하고 모든 인류가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나는 그들보다 낮은 차원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내가 '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은 나로 하여금 행동을 강요했다.
직접 그녀를 찾아 나서야 했다. 고차원의 존재가 낮은 차원으로 내려오게 되면, 그 형상은 마치 시간선 위에 길게 드리워진 흔적처럼 연속적인 모습으로 퍼지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그녀가 있을 도시에 도달했다. 그 도시는 온통 회색빛으로 가득했으며, 그 우울하고 음울한 기운이 마치 모든 것을 삼키려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구불구불 걸어가자, 녹이 슬고 닫힌 철문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니 어둠 속에 따스한 주황빛이 서서히 깔려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올드패션드를 주문하고 고요한 공간 속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밀라르카가 나타났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바의 한쪽에 자리 잡았다. 블러디 메리를 주문하는 그녀의 손길과 고요한 시선, 그리고 그녀가 앉은 자리 주변으로 떠도는 기묘한 긴장감이 나를 압도했다.
나는 그녀를 응시했다. 저 블러디 메리는 진리와 관련된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녀의 취향일 뿐일까. 나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느적이는 움직임으로 술잔에 입을 갖다 댈 뿐이었다. 모든걸 통달한 현자라는 것이 원래 저렇게 추래한 모습이었던 것일가. 그녀는 진리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듯, 입을 열지조차 않았다. 그렇게 두어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아무 이변도 없이 술값을 결재하고는 바 밖으로 나갔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나갔다.
그녀는 바 밖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한걸음 한걸음, 반쯤 부서진 보도블럭을 따라 걸었다. 그녀의 길다란 그림자에는 무거운 추가 가득한 듯 했다. 그녀는 낡은 아파트로 들어섰다. 먼지가 가득 낀 문을 열고, 낡은 백열전구 하나가 광원의 전부인 그 작은 상자 안으로 몸을 우겨넣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다. 이는 그가 위버맨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너무 빈곤해보였기 때문이다. 진리를 안다는 자가 겨우 이것 뿐인가. 그 모든걸 통달하고 부유할 수 없는것이 이 세상의 진리인가. 결국 모든것은 멸망의 길로 가는가. 아까 그녀를 보며 느낀 공포감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그저 측은지심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아파트 문을 두드릴까 수 번 고민하다가,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그녀에게 무슨 행동을 하여도 무의미 할 듯 했다.
다만 서서히 돌아가던 길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들었다. 그녀의 옆 집에서 지독하리만큼 죽음의 냄새가 풍기고 있던 것이었다.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옆집의 누군가에 의해 죽을 것이다. 그것뿐이 그녀의 운명이다. 라고.
씁쓸했다. 진리를 앎에도 누구보다도 인간답게 살았던 그녀에게 이런 종말을 불러다오는 것이 신으로써 합당한 일인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전능하지만 무능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도나이 - 메피스토펠레스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의 시선에 따라 파우스트 - 밀라르카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 를 조명할 뿐이죠. 진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는가. 신은 과연 전능한가. 사회에 있을만한 통념이나 많은 신념 등에 던지는 철학적 질문입니다.
그리고 슬슬 드러낼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너의 자살을 위하여 의 모든 스토리는 하나의 세상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죠. 각각 회차가 순서에 따른 전개는 아닙니다만, 주의깊게 보면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많지요. 이번 회차는 그런 연관성을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니 쉬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넓게 뻗어갈 너의 자살을 위하여를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한 작품
괴테 - 파우스트
한강 - 채식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