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흙을 더 채워 조금 높이고 새로 지었다. 집을 짓기 전부터 앞집 아저씨가 관섭을 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먼저 살고 있어서 부리는 텃새라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이 지역 토박이셨다. 고향을 벗어나 젊은 시절을 보내긴 하셨지만 일찍 돌아오셔서 터를
잡고 살고 계셨다. 아파트가 생기면서 할 수 없이 이웃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신 것이다.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지 않아 앞집 아저씨가 술에 취해 집에 오셨다.
"내가 이 집보다 더 높은 2층 집 지을 거야"라며 목청을 높여고 아버지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앞집에 그늘이 드리워지거나 그런 것도 없다. 단지 자기 집보다 크고 높다는 이유였다.
마당 겸 주차장이 있고 조그만 화단 뒤쪽은 산이다. 산 가까이 안쪽으로 집을 지어서 불편함을 줄 수 없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이사 온 지 20년이 다되어 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 소동이 시작되었다.
40년 동안 농사를 지으시다가 몸이 급 속도로 나빠지는 바람에 아버지는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되셨다.
잦은 병원 입원과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면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못 하셨다.
코로나와 겹치면서 입원을 하게 되면 혼자만 병원에 계셔야 해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식사를 거의 드시지 못했다. 죽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소화가 안된다고 하셨다.
죽 같은 묽은 것을 수액처럼 넣기도 했는데 자꾸 막히고 팔이 많이 부어 퇴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혼자 병원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신 아버지, 갑자기 자기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어지러움을 많이 호소하셨다.
우울증이 오신 것 같아서 정신병원도 모시고 다녀왔다. 처음에 정신병원에 가보자고 했을 때 화를 많이 내셨다. 나는 딱 한 마디만 했다. 정신병원은 미쳐야 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면 갈 수 있다고.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가서 상담도 받고 약도 받아 오셨다.
섬에 살고 계신 고모가 아버지 안부가 궁금하셨는지 전화를 하셨다. 그러다 밥맛 돌아오게 하는 약이 있다고 사서 먹으라고 하셨다고 했다. 밥맛 돌아오는 약? 참 생소 하긴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았다.
약국에서 판다고 하니 일말에 희망을 가져 봤다.
약국에서 파는 거치곤 착한 가격은 아니지만 효과는 있었다. 서서히 아버지의 식사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플라세보 효과 일까? 소화제가 들어 있나?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아지고 있어서 가족 모두가 한 시름 놓았다. 팔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 운동을 조금씩 시작하시며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집 근처에 큰 못이 하나 있는데 잘 꾸며져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특설 무대도 있어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근처 산에 등산객들도 제법 있었다.
운동하기 딱 좋은 곳에 살고 계신 것이었다. 다리에 힘이 부족해서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 시다가 공원 주차장을 한 바퀴 돌게 되시고 이제는 못을 한 바퀴 돌고 계신다. 대략 50분 정도 소요가 된다.
엄마와 운동을 같이 가시기도 하고 혼자 가시기도 한다. 점차 회복되는 모습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앞집 아저씨가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운동을 가는 아버지를 따라와 커피 한잔 하자는 둥 깐족깐족 말을 했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시기에 안 마신다고 하니 자꾸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몸싸움으로 이어지다 이내 옆집 아저씨가 도망을 가셨다. 아버지는 어디 가도 지지 않으셨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직은 회복 중에 있다. 그래도 옆집 아저씨가 만취에 가까워서 온 힘을 다해서 빠져나오신 모양이다.
집에 와서 힘들어하고 계셨다.
다음 날 찾아와서 술에 취해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러 왔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엄마도 화가 나셔서 앞집 아주머니께 한 소리를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술에 만취해 집에 찾아와서 한 바탕 소동을 벌였다. 밀대 봉을 들고 와 현관문을 부술 기세로 내리치고 고함을 치면서 날리도 아니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112에 신고를 하셨고 경찰이 도착한 후에 조용해졌다.
경찰분이 데려갈까요?라고 물었다. 이웃이니까 좋게 넘어가주려고 했다. 그래서 앞집 아저씨를 집으로 돌려
보내면서 경찰분이 단단히 일러두셨다고 했다.
그러나 앞집 아저씨는 밤새 도록 창문에 대고 아버지 이름을 부르면서 욕을 하고 간첩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고 있었다. 경찰을 불러서 화가 났다는 말이다. 이웃이라서 호의를 베풀었는데 적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밤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더니 낮에 자는지 조용했단다.
이 틀 뒤 술에 만취해서 집으로 쳐들어와 거실에 누웠다고 했다. 앞집 아주머니도 달려와 말려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네가 이사 가는지 내가 이사 가는지 두고 보자" 소리치기도 하고 "어디 어떻게 사는지 구경 좀 해보자"며 몸을 일으켜 집구석구석을 뒤지려 하자 엄마가 막아섰다. 그러자 막말을 담은 욕설을 했단다.
손 지검을 하려고 해서 아버지가 말리려다 몸싸움이 시작되고 팔을 잡았다. 다시 드러누워서 고함을 지를 때
경찰이 도착해서 현행범으로 잡아 경찰차에 태웠다. 아버지도 조서를 쓰기 위해서 같이 동행하셨다.
엄마가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경찰서로 가고 나는 엄마를 보러 집으로 갔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소파에 앉아 계셨다. 처음 이런 일이 있을 때 CCTV를 달자고 권유를 했지만 뭐 이런 일로 귀찮게 달아하셨었다. 이제는 두 말하지 말고 CCTV를 달겠다고 말씀드렸다.
경찰서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남편은 고개를 도리도리 했다.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경찰서에 가면 죄를 짓었던 아니던 약간의 위축이 될 텐데 도라이 면모를 잘 보여 줬다고 한다.
경찰에게 물가 져 오라고 소리치고 아버지가 나이도 훨씬 많은데 반말에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 있었단다.
경찰이 보다 못해 나이도 많은데 왜 반말이냐고 물었더니 같이 늙어가는데 반말하면 어떠냐고 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