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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의투영 Feb 29.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27. 아직은 ing(합의는 없다)

이웃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1.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음

예) 이웃 동네

2. 가까이 사는 집 또는 그런 사람.

예) 이웃끼리 친하게 지내다.

라고 쓰여 있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다. 그런 건 사전에 나오는 말이었나 싶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팔고 이사를 왔다.

원래 집이 있긴 했는데 너무 낡고 비만 오면 마당이 물에 잠긴다.

부수고 흙을 더 채워 조금 높이고 새로 지었다. 집을 짓기 전부터 앞집 아저씨가 관섭을 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먼저 살고 있어서 부리는 텃새라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이 지역 토박이셨다. 고향을 벗어나 젊은 시절을 보내긴 하셨지만 일찍 돌아오셔서 터를

잡고 살고 계셨다. 아파트가 생기면서 할 수 없이 이웃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신 것이다.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지 않아 앞집 아저씨가 술에 취해 집에 오셨다.

"내가 이 집보다 더 높은 2층 집 지을 거야"라며 목청을 높여고 아버지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앞집에 그늘이 드리워지거나 그런 것도 없다. 단지 자기 집보다 크고 높다는 이유였다.

마당 겸 주차장이 있고 조그만 화단  뒤쪽은 산이다. 산 가까이 안쪽으로 집을 지어서 불편함을 줄 수 없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이사 온 지 20년이 다되어 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 소동이 시작되었다.

40년 동안 농사를 지으시다가 몸이 급 속도로 나빠지는 바람에 아버지는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되셨다.

잦은 병원 입원과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면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못 하셨다.

코로나와 겹치면서 입원을 하게 되면 혼자만 병원에 계셔야 해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식사를 거의 드시지 못했다. 죽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소화가 안된다고 하셨다.

죽 같은 묽은 것을 수액처럼 넣기도 했는데 자꾸 막히고 팔이 많이 부어 퇴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혼자 병원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신 아버지, 갑자기 자기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어지러움을 많이 호소하셨다.

우울증이 오신 것 같아서 정신병원도 모시고 다녀왔다. 처음에 정신병원에 가보자고 했을 때 화를 많이 내셨다. 나는 딱 한 마디만 했다. 정신병원은 미쳐야 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면 갈 수 있다고.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가서 상담도 받고 약도 받아 오셨다.


섬에 살고 계신 고모가 아버지 안부가 궁금하셨는지 전화를 하셨다. 그러다 밥맛 돌아오게 하는 약이 있다고 사서 먹으라고 하셨다고 했다. 밥맛 돌아오는 약? 참 생소 하긴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았다.

약국에서 판다고 하니 일말에 희망을 가져 봤다.

약국에서 파는 거치곤 착한 가격은 아니지만 효과는 있었다. 서서히 아버지의 식사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플라세보 효과 일까? 소화제가 들어 있나?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아지고 있어서 가족 모두가 한 시름 놓았다. 팔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 운동을 조금씩 시작하시며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집 근처에 큰 못이 하나 있는데 잘 꾸며져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특설 무대도 있어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근처 산에 등산객들도 제법 있었다.

운동하기 딱 좋은 곳에 살고 계신 것이었다. 다리에 힘이 부족해서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 시다가 공원 주차장을 한 바퀴 돌게 되시고 이제는 못을 한 바퀴 돌고 계신다. 대략 50분 정도 소요가 된다.

엄마와 운동을 같이 가시기도 하고 혼자 가시기도 한다. 점차 회복되는 모습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앞집 아저씨가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운동을 가는 아버지를 따라와 커피 한잔 하자는 둥 깐족깐족 말을 했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시기에 안 마신다고 하니 자꾸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몸싸움으로 이어지다 이내 옆집 아저씨가 도망을 가셨다. 아버지는 어디 가도 지지 않으셨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직은 회복 중에 있다. 그래도 옆집 아저씨가 만취에 가까워서 온 힘을 다해서 빠져나오신 모양이다.

집에 와서 힘들어하고 계셨다.


다음 날 찾아와서 술에 취해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러 왔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엄마도 화가 나셔서 앞집 아주머니께 한 소리를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술에 만취해 집에 찾아와서 한 바탕 소동을 벌였다.  밀대 봉을 들고 와 현관문을 부술 기세로 내리치고 고함을 치면서 날리도 아니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112에 신고를 하셨고 경찰이 도착한 후에 조용해졌다.

경찰분이 데려갈까요?라고 물었다. 이웃이니까 좋게 넘어가주려고 했다. 그래서 앞집 아저씨를 집으로 돌려

보내면서 경찰분이 단단히 일러두셨다고 했다.

그러나 앞집 아저씨는 밤새 도록 창문에 대고 아버지 이름을 부르면서 욕을 하고 간첩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고 있었다. 경찰을 불러서 화가 났다는 말이다. 이웃이라서 호의를 베풀었는데 적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밤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더니 낮에 자는지 조용했단다.


이 틀 뒤 술에 만취해서 집으로 쳐들어와 거실에 누웠다고 했다. 앞집 아주머니도 달려와 말려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네가 이사 가는지 내가 이사 가는지 두고 보자" 소리치기도 하고 "어디 어떻게 사는지 구경 좀 해보자"며 몸을 일으켜 집구석구석을 뒤지려 하자 엄마가 막아섰다. 그러자 막말을 담은 욕설을 했단다.

손 지검을 하려고 해서 아버지가 말리려다 몸싸움이 시작되고 팔을 잡았다. 다시 드러누워서 고함을 지를 때

경찰이 도착해서 현행범으로 잡아 경찰차에 태웠다. 아버지도 조서를 쓰기 위해서 같이 동행하셨다.


엄마가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경찰서로 가고 나는 엄마를 보러 집으로 갔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소파에 앉아 계셨다.  처음 이런 일이 있을 때 CCTV를 달자고 권유를 했지만 뭐 이런 일로 귀찮게 달아하셨었다. 이제는 두 말하지 말고 CCTV를 달겠다고 말씀드렸다.


경찰서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남편은 고개를 도리도리 했다.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경찰서에 가면 죄를 짓었던 아니던 약간의 위축이 될 텐데 도라이 면모를 잘 보여 줬다고 한다.

경찰에게 물가 져 오라고 소리치고 아버지가 나이도 훨씬 많은데 반말에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 있었단다.

경찰이 보다 못해 나이도 많은데 왜 반말이냐고 물었더니 같이 늙어가는데 반말하면 어떠냐고 했단다.

대답을 듣고 기가 막혔는지 고개를 내저었다고 했다.

화장실이 급하고 소란을 피워 다녀오면서 똥 묻혀온 휴지를 경찰에게 먹으라고 들이밀기도 했단다.

조사가 다 끝나고 돌아가려는 아버지를 향해 "나가면 찔러 죽여 버릴 거야"라는 소리도 하고.

유치장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어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형사분께 최대한 늦게 내 보내 달라고 말을 했다.


저녁을 먹는 중에 아버지 손을 보게 되었는데.. 덜덜 떨리는 손을 보고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직 회복 중인  아버지에게 무슨 억한 심정이 있어서 괴롭히는 건지..


아버지, 엄마 전화번호를 등록해 두었다. 112에 전화만 걸면 이유도 묻지 않고 경찰이 출동하도록.  순찰하는 경로에도 추가되었다. 가끔 괜찮으신지 경찰분들이 드려다 보고 가시곤 했다.

경찰서에 다녀온 다음날 CCTV도 달아 두었다. 형사분도 걱정이 되셨는지 가끔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었다.


남편과 나는  일이 끝난 후 부모님 댁에 방문 후 10시에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유치장에서 나온 지 이 틀만에 집에 찾아왔다. 운동 간 사이 와서 불러도 대답이 없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고 창문을 열려고 했던 모양이다. 방충망이 열려 있었다고 했다.

2시쯤에 다시 찾아와서 현관문을 차고 욕을 하면서 합의를 해라는 어이없는 말을 했단다.

와중에 앞집 아주머니가 창문에서 빨리 나오라고 손짓하면서 부르고 있었다. CCTV를 달았다는 걸 알았나 보다. 허둥지둥 빠져나가는 모습을 CCTV로 확인했다.


그 뒤로 집에는 오지 않았지만 합의를 하자고 자꾸 전화를 해서 못 살게 굴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앞집 뒷집 사는데 이웃사람끼리 좀 그러니 합의를 해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을 했단다. 엄마는 좋은 게 좋다고 합의를 해주는 게 좋지 않겠냐며 각서를 받고 하겠다고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나는 너무가 화가 나서 무슨 소리냐고 그 인간들이 처음부터 엄마, 아버지를 이웃으로 생각을 했냐고 말을 했다. 그래도 이웃인데 그러는 거 아니라고..

경찰서에 가서 하면 된다고. 순진해도 너무 순진한 사람들이다.

한 고집하는 두 양반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와중에 계속 전화를 하고 사람이 돌기직전까지 몰아 가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다시 신고하면 되고 했다.

검색을 해서 보여 주었다. 모욕, 가택침입은 합의를 하면 다시 그 건에 대해서 죄를 묻지 못한다고 찬찬히 설명을 하고 다시 그 사람이 안 올 것 같냐고 다시 물었다.

술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앞집 아저씨는 다시 올 것이 분명하다. 합의를 위해서 지금은 잠잠한 상태이지만

앞집 아주머니를 통해 꾸준히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

아버지가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무슨 합의를 하자고 하느냐고 따지니 자기는 잘 못 한 게 없는데 무슨 사과를 하라고 하냐면서 도리어 화를 냈다고 한다. 당사자가 아니라서 사과를 못 한단다고 했다.

무조건 이웃이니까 합의해 내라고 막무가내로 때를 쓰고 있는 꼴이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자식들도 있고 합의만 받아내면 같은 일로 고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남편과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쳤는데 고개를 돌렸던 사람들이다.

누구인지 안다는 말인 것이다. 전혀 미안한 기색은 없었다.

전화를 안 받으니 작문의 문자를 보내서 합의를 해달라고 했다. 각서를 써 주겠다는 둥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남편이 사과를 하겠다고 말이다. 집으로 오지 말라고 하니 어디서 만나는 게 좋겠냐는 말이었다.

집으로 오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다. CCTV 때문에 집에 오지 못 하는 것이다.


경찰서에서 한 행동으로 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부모님도 알고 있지만 이웃이라서 봐주려고 했다. 다시 신고하면 되니까.

이제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신 상태다. 합의는 없다.

유치장에서 나오자마자 술 먹고 찾아와 신고를 해서 화가 난 것을 현관문에 화풀이했고 합의해 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증거도 확보해 둔 상태다.


부모님 전화기에  앞집 사람들 번호를 모두 수신 차단을 해드렸다.

합의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나는 안다. 형사 즐결심판이 끝나면 초범이고 벌금은 많이 안나 온다.

민사로 넘어갈까 봐 그런다는 것을..

앞으로 더 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면 민사까지 갈 생각은 없다. 제발 조용히 살고 싶다는 부모님의 소망이다. 이웃이라는 관계는 이미 금이 간 상태다. 앞집 뒷집 사는 사람 일뿐이다.


부모님 운동가는 시간, 문 열리는 소리에 촉을 대고 있는 건지 기다렸다가 달려 나와 친한 척 말을 건단다.

"운동 가십니까?" 따라오지 않는 게 다행이다.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아니 당당하게 와서 행패 부렸으면 당당하게 벌금내면 되지 왜 합의를 해달래~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 당신은 변하지 않을 거잖아.

이사 온 지 2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텃세 부리는 당신이잖아. 합의는 없어!!!


다시 찾아오면 신고하라고 단단히 부모님께 일러두었다.  그때는 접근 금지 신청도 해야 될 것 같다.

심난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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